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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중국의 부패와 '甲질' 유전자

바람아님 2015. 1. 26. 09:59

(출처-조선일보 2015.01.26 안용현 베이징 특파원)


	안용현 베이징 특파원 사진
중국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낙마하는 '부패 호랑이(고위직)' 뉴스를 읽다 보면 

입이 딱 벌어질 때가 적지 않다. 부패 규모 때문이다.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은 900억위안(약 15조6789억원), 

링지화(令計畫) 전 통일전선부장은 837억위안(약 14조5889억원),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은 현금 1t, 

구쥔산(谷俊山) 전 총후근부 부부장은 200억위안(약 3조4860억원)을 축재했다고 한다. 

쉬차이허우의 현금은 너무 많아 세지 못하고 무게를 달아야 했다. 

억(億)이 아니라 조(兆) 단위를 챙겨야 '호랑이급'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처음에는 이런 액수가 중국 특유의 과장법인 줄 알았다. 

하지만 '파리(하위직)'도 수백억원을 모으는 게 중국의 현실이다. 

실제 작년 11월 허베이성 친황다오(秦皇島)시의 수도 담당 공무원은 집 안에 현금 1억2000만위안(약 212억원)과 

황금 37㎏, 68채의 부동산 서류를 쌓아뒀다가 체포됐다. 

과장급인 그에게는 '호랑이 파리(虎蠅)'라는 별명이 붙었다.

중국은 전제 왕조가 무너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산당 독재 시대를 맞았다. 당이 왕조를 대신했다.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만큼 권력에 대한 민주적 견제의 기반이 약하다.


이러한 상황에선 조그만 권력만 있어도 이른바 '갑(甲)질'을 하기가 쉽다. 

저우융캉은 석유방(石油幇·석유업계 인맥) 우두머리로 자산 2조4000억위안(약 425조원)짜리 페트로차이나(중국석유)를 

맘대로 주물렀다. 

쉬차이허우는 230만 인민해방군을 상대로 '계급 장사'를 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에 축재는 가장 쉬운 일이었다.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의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가 동업자였던 영국인 사업가를 독살한 것도 갑의 횡포였다.

대다수 중국인은 권력의 이런 '갑질'에 분노한다. 그러나 조직적인 저항은 꿈꾸지 않는다. 

공산당의 감시와 통제가 두렵기 때문이다. '갑질'을 고발할 언론의 자유도 없다. 

차라리 갑을(甲乙) 관계, 주종(主從) 관계에 순응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갑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을 '질서'라고 말하는 중국인도 만났다.

중국의 마음에 뿌리내린 갑을(甲乙) 관념은 국제 관계에도 적용될 조짐이 보인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작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만방래조(萬邦來朝)'에 비유했다. 

당나라 때처럼 모든 주변국(만방)이 조공(朝貢)을 바치러 중국에 왔다는 의미다. 

얼마 전 한·중 정부 관계자들의 정기 교류 모임에서 중국 당국자는 우리 정부 인사에게 "조공 외교 시대에 아시아는 평화로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이달 초 유가(油價) 폭락으로 재정난을 겪는 중남미 산유국을 베이징으로 불러 거액을 빌려주며 

'홈그라운드 외교'를 선언했다.

중국은 이미 스스로 국제 무대에서 '갑'이 됐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숨어서 힘을 기른다)'는 이미 옛말이 됐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패권국에 오르는 날 중국의 '갑질'을 보게 될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