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 미술관에 갔어요] [97] 이중섭의 사랑, 가족展

바람아님 2015. 1. 30. 12:00

(출처-조선일보 2015.01.30 이주은 교수·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97] 이중섭의 사랑, 가족展

 '황소의 작가' 이중섭… 꾸밈없는 사랑을 그리다

전쟁의 고통 겪으면서도 아내·아들과의 사랑 지킨 이중섭
발가벗고 물고기 잡는 어린아이, 활로 사냥하는 남성 그림 통해 있는 그대로의 행복 표현했죠

먼 거리를 갈 때 지루하지 않게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동차보다는 고속 열차, 고속 열차보다는 비행기. 이렇듯 빠른 속도로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을 활용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과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며칠을 걸어서 가더라도 시간 가는 줄 모를 테니까요.

사랑의 힘은 대단합니다.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게 하니까요. 
우리 미술계에도 사랑의 힘을 보여준 커플이 있어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화가 이중섭(1916~1956)과 그의 일본인 아내 마사코지요. 
결혼 전, 마사코는 오직 사랑하는 이를 만나려고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로 넘어왔어요. 
1945년 당시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지고 있었어요. 
마사코는 공습 위험을 뚫고 지하에 숨어가며 기차로 도쿄에서 혼슈에 있는 시모노세키까지 갔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전쟁으로 배가 끊어지기 직전, 우리나라로 가는 배에 아슬아슬하게 올랐죠. 
부산을 지나 서울까지 오니, 마사코의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어요. 
그래도 이중섭을 만나고 나니, 반가워 힘들었던 기억은 모두 눈 녹듯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국가 간의 지배 관계, 이념 차이에 따른 전쟁, 그리고 가족이 모두 흩어져야 했던 상황까지. 
이 삼중(三重)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중섭과 마사코는 끝내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죠.
[미술관에 갔어요] '황소의 작가' 이중섭… 꾸밈없는 사랑을 그리다이중섭 하면 굳건하고 기운찬 황소를 그
린 화가로만 기억하기 쉽지요. 
하지만 그는 평생을 두고 사랑과 행복에 관한 
그림을 그린 섬세하고 부드러운 면을 지닌 
사람이기도 했어요. 
아내에게는 편지로 뽀뽀를 백 번씩 보내며 
사랑을 표현한 남편이었고, 
두 아들에게는 작은 일에도 일일이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다정한 아빠였거든요.

그가 그림으로 표현한 사랑과 행복의 모습은 
아주 소박해요. 
대단한 부자가 사는 으리으리한 집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훌륭한 자연경관이 나오지도 않아요. 
멋진 옷을 입은 사람들도 나오지 않죠. 
그의 그림 속에는 남자와 여자, 아이 할 것 없어 
모두 발가숭이로 노닐고 있어요. 
발가벗고 있는데도 아무도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지요. 그러니 그림을 보는 우리도 눈을 가릴 
필요가 없답니다.

작품 1을 보세요. 여자가 숲 속에서 쉬고 있어요. 
싱그러운 나뭇잎 사이에서 여자는 아주 편안하고 
건강해보이네요. 

작품 2에서는 살갗이 탄탄해 보이는 남자가 
활로 새를 겨냥하고 있군요. 화살을 한 뭉치 
들고 사냥하는 남자를 따라 나온 여자도 
뒤쪽으로 보입니다. 아마 아주 옛날 옛적 
원시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지냈겠지요? 

이중섭이 상상하는 행복이란, 
이렇듯 원시적이면서도 꾸밈이 없는 진실에 
있었어요. 
그는 마사코를 처음 만났을 때, 이런 그림을 
엽서에 그려 보내곤 했어요. 
아무 말도 쓰여 있지는 않았지만, 이 그림을 
받은 마사코는 이중섭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답니다.
자연 속 보금자리에서 진심 하나로 그대와 
같이 살고 싶다는 고백이었으니까요.

이중섭은 예술에서도 오직 진실의 힘만이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어요. "예술은 진실의 힘이 
비바람을 이긴 기록이다. 진실에 살지 않는다면 
예술이 싹트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이 추구하는 진실은 스스로 찾는 
것이지,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미술 교사로 취직했을 때, 그는 학생들에게 
진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결국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얻은 직장은 단 2주 
만에 그만두고 말지요.

이중섭이 찾은 가장 진실한 존재는 어린아이였어요. 

작품 3에서 보듯 그림 속 아이들은 물고기를 
잡거나 물고기 위에 올라타서 뒹굴고 있네요. 
작품 4에서는 환한 달빛 아래 팔다리 쫙 뻗고 
마음 편한 표정으로 누운 어린아이가 보이네요. 
어린아이들의 맑은 세상, 이것이 이중섭이 
꿈꾸던 파라다이스가 아니었을까요?


현대화랑 (02)2287-3591
이중섭의 사랑, 가족展
전시는 2015. 01.06부터 02.22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