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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건보 전문가집단까지 등 돌리게 한 어설픈 복지부

바람아님 2015. 2. 3. 12:08

[중앙일보 2015-2-3 일자]

 

정부의 건강보험 개혁 중단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 급기야 개선안을 짰던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의 이규식 단장이 비판 성명서를 내고 전격 사퇴했다. 위원들도 문형표 장관의 오찬 요청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교수와 위원들은 건강보험의 최고 전문가들이다. 국민에 이어 전문가 집단까지 정부에 등을 돌렸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가슴이 답답하다.

 그런데도 정부의 카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저소득층 지역건보 부과체계를 일부 손보겠다는 것이다. 종합소득 자료가 500만원이 안 되는 599만 세대가 대상이다. 성·연령·재산·차를 따져 소득을 추정(평가소득)할 때 적용하는 기준을 완화하려는 것이다.

 정부가 방향을 잘못 잡았다. 부담의 일부 완화가 문제가 아니다. 평가소득 제도 자체가 반(反) 서민적이라는 점을 놓치고 있다. 갓난아이 한 명이 태어나자마자 3560원의 건보료를 매긴다. 19세에서 20세가 되면 건보료가 2.8배로 뛴다. 차의 재산가치를 너무 높게 잡아 상용차도 1만원 정도가 붙는다. 재산·차를 따져 평가소득을 산정하고 나서 또 재산·차에 건보료를 매긴다. 이중 부과다. 계산방식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건보공단 직원들도 헷갈릴 정도다.

 기획단의 처방은 평가소득 폐지다. 대신 소득(자료)이 없는 저소득층에 한해 일괄적으로 정액 건보료를 매기자고 제안한다. 재정 손실은 종합소득이 있는 고소득 직장인과 고소득 피부양자의 건보료를 올려 벌충하기로 했다. 피부양자 중 소득이 2000만원이 넘는 사람만 19만 명이다. 또 연금소득이 2000만원 넘는 퇴직 공무원·군인·사립학교 교직원이 약 16만 명에 달한다. 일반 국민에 비해 연금도 많이 받으면서 건보료는 무임승차하고 있다. 특혜다.

 정부의 미세조정 방침은 언 발에 오줌 누기도 안 된다. 제도만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기획단이 제시한 안을 토대로 근본 개혁에 즉각 나서라. 건보료는 전 국민의 98%가 당사자다. 세금보다 훨씬 무섭다. 연말정산이 강풍이라면 건보료 헛발질은 태풍 그 이상이다. 어설픈 미세조정으로 태풍을 막을 순 없다.

 

 

[사설] 건보료 개혁방향 분명한 만큼 원안대로 추진하라

[국민일보 2015-2-3 일자]
건강보험료 개편 백지화에 대한 비난 여론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가운데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장이 정부 결정에 반발하면서 위원장직을 돌연 사퇴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기획단장인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2일 '사퇴의 변'을 통해 "정부의 개선 의지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정부의 정책 뒤집기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기획단은 이 교수를 비롯해 학계·노동계 인사 등 16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 교수는 2013년 7월 출범한 기획단을 지금까지 이끌어왔다. 그런 총책임자가 정부에 직격탄을 날리며 물러난 것은 여론을 무시한 정부의 일방통행식 처사에 대한 강력한 항의 표시다. 무책임, 무소신, 무능력의 3무(無) 정권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실망감이 성명서에 짙게 배어 있다.

이 교수는 지난달 28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느닷없이 개편 중단을 선언하며 내세운 이유에 대해 정면 반박했다. 당시 문 장관은 기획단 논의 자료가 2011년 것이어서 자세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하고,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해야 하며, 국민 설득을 위한 충분한 논리와 시간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이 교수는 기획단이 1년6개월간 논의했음에도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것은 무책임한 변명에 불과하고, 여론의 긍정적 반응을 이미 검증받았는데 국민적 공감대가 없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우며, 올해 자료로 시뮬레이션을 하겠다는 것은 현 정권에서 개선을 하지 않겠다는 소리라고 맞받아쳤다. 국민을 우롱하는 문 장관의 황당한 핑계에 대한 적확한 지적이다.

국민은 지금 분노하고 있다. 직장과 지역가입자에게 다른 기준을 적용해옴으로써 형평성 논란이 초래됐던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기획단에 제동을 건 정부의 몰상식에 개탄하고 있다. 연간 6000만건의 건강보험 관련 민원이 빗발치고 있는 실정임에도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기획단 개편안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으니 참담하기 짝이 없다. 개편안을 적용할 경우 600만명의 보험료 부담이 줄고 45만명의 부담만 늘어나는데도 일부 특권층의 반발을 우려했다고 하니 '부자만을 위한 정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민심 이반이 심각하다. 후폭풍이 거세지자 복지부가 취약계층 지역가입자의 건보료를 덜어주는 방안을 올 상반기에 추진하기로 했으나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건보료 무임승차 고소득층은 그대로 놔두겠다는 것이어서 형평성 시비가 계속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론 건보 재정이 위협받게 된다. 정부는 위기를 꼼수로 모면하려 하지 말고 기획단 개편안을 그대로 추진해야 한다. 소신 없는 말 바꾸기로 이번 사태를 초래한 문 장관은 더 이상 이 일을 맡을 수 없는 만큼 퇴진하는 게 순리다. 장관 의지와 상관없이 개편작업을 중단시킨 윗선이 있다면 누구인지도 밝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