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음악칼럼 265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01] 불법 이민자와의 전쟁

조선일보 2024. 3. 4. 03:01 Genesis ‘Illegal Alien’(1983) “국경 너머 약속의 땅이 있지/ 모든 것이 쉽게 이루어지는 곳, 넌 그저 손만 내밀면 돼" 영국의 지성적인 록밴드의 대명사나 다름 없는 제네시스가 40여 년 전에 발표한 이 노래는 예나 지금이나 미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남부 국경의 불법 이민자 문제를 다루고 있다. 목숨을 건 월경을 너무 가볍게 다루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사실상 주제를 담고 있는 다음과 같은 반복적 후렴구는 그런 우려를 털어낸다. “불법적인 이방인이 되는 건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야(It’s no fun being an illegal alien).” 불법 이민자들이 합법적 절차를 걸쳐 시민적 권리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 대다수가 미..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00] 침묵을 강요하는 소리

조선일보 2024. 2. 26. 03:02 Simon & Garfunkel ‘The Sound of Silence’(1964)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듀오로 칭송되는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이 명곡은 표면적으로는 현대 사회의 의사 소통 부재를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케네디 암살과 석연찮은 수사 과정에 대한 지적인 분노를 표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 노래는 침묵 속에서 움직이는 기득권의 보이지 않는 손과 진실로부터 격리된 대중들에 강요되는 침묵을 다룬다. “사람들은 주장하는 대신 그냥 떠들어대고/ 경청하지 않고 그저 듣고 흘리며/ 사람들은 결코 같이 부를 수 없는 노래들이나 쓰고 있네/ 그래서 아무도 침묵의 소리에 감히 대들지 못하지/ 내가 말했네, ‘바보들, 당신들은 그..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99]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조선일보 2024. 2. 20. 03:02 Katy Perry ‘Roar’(2013)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No Players is bigger than the club).” 단체 스포츠에서, 아니 스포츠를 넘어 이제는 모든 조직 경영에 금과옥조처럼 인용되는 이 짧고 간결한 격언의 출처는 명확지 않지만 지구 상에서 가장 험난하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영광을 이끈 앨릭스 퍼거슨 감독의 철학을 한 줄로 요약한 말임은 분명하다. 선수 경력은 이렇다 할 것이 없는 그는 감독으로 위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맨유에서 27년간 감독직을 수행하면서 리그 우승 13회를 비롯해 우승 트로피를 모두 38개 들어 올리도록 이끌었다. 맨유는 그가 부임하기 전 25년간 리그 우승이 없었다...

[일사일언] 스위프트를 만든 사람들

조선일보 2024. 2. 19. 03:02 얼마 전 미국 그래미 시상식에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최고 영예인 ‘올해의 앨범’ 부문 역대 최다 수상자가 됐다. 그녀의 시상식에서는 올해 수퍼볼을 들썩인 남자 친구이자 미식축구 스타 트래비스 켈시 대신, 스위프트가 부른 수많은 곡을 쓴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잭 안토노프가 시종 옆을 지켰다. 시상식 하이라이트였던 스위프트의 무대는 앨범에 참여한 작사가, 작곡가, 프로듀서진이 올라가 함께 채웠다. 스위프트는 수상 소감에서도 그들을 빠짐없이 호명했다. 스위프트의 시상식을 보면 그래미를 왜 세계 최고 권위 대중음악상이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미의 시상 부문은 장르별, 직능별로 촘촘히 제정해 100가지나 된다. 매 부문 수상작 트로피는 가수뿐 아니라 작사가, 작곡가, 프..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96] ‘성난 사람들’의 음악

조선일보 2024. 1. 22. 03:00 Hoobastank ‘The Reason’(2003) 캘리포니아 출신 젊은이들이 결성한 모던 록 밴드 후바스탱크는 독일의 어느 주유소 이름에서 밴드 이름을 따왔다. 이 노래는 발표 직후 빌보드 모던 록 차트에서 5주 연속 1위를 하며 세계적으로도 1000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 노래는 세상과 부딪히고 실연과 좌절을 겪으며 앞으로 한발씩 나아가야 하는 젊음의 힘겨움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한 올씩 풀어낸다. ‘TV의 아카데미상’ 에미상 시상식에서 한국계 감독과 주연배우가 참여한 ‘성난 사람들(BEEF)’이 작품상과 감독상, 남녀 주연상 및 각본상 등 총 8개 트로피를 움켜쥠으로써 전 세계 드라마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각본과 연출을..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95] 제3의 선택

조선일보 2024. 1. 15. 03:07 Pearl Jam ‘Not for You’(1994)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대만 총통 선거가 대만 독립과 친미 성향을 지닌 집권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그의 득표율은 40.05%.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주목할 점은 제3당으로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은 민중당 커원저 후보가 획득한 26.46%의 득표율이다. 총통 선거와 함께 치러진 총선에서 민중당은 8석에 머물렀지만 민진당과 국민당 모두 과반 의석에 실패해 향후 캐스팅 보터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공화·민주 양당 체제인 미국에서도 제3당의 도전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지만, 2000년 녹색당 돌풍을 일으키며 민주당 앨 고어의 낙선과 공화당 조지 W. 부시의 승리에 일조한 랠프 네이더의 사례 말고는..

[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오! 사랑하는 아버지…그 오해와 진실

중앙일보 2024. 1. 9. 00:14 수정 2024. 1. 9. 00:46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사진)에 나오는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제목만 보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담은 노래처럼 보인다. 제목뿐만 아니라 멜로디도 그렇다. 그 서정적인 멜로디를 듣고 있으면 아버지를 존경과 사랑이 담뿍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딸의 모습이 연상된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이런 상상과는 거리가 멀다.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 딸이 아버지에게 결혼이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하면서 이 노래를 부르는데, 그 내용이 거의 협박 수준이다. 그녀는 만약 자기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강물에 몸을 던지겠다며 아버지를 위협한다. 그리고는 “저는 죽고 싶어요”라는 말로 다시 한 번 아버지의 놀란 가슴에..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94] 중국의 와인 굴기

조선일보 2024. 1. 8. 03:00 Jonah Ward, ‘False Confidence’(2020)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부상하면서 프랑스 와인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지만 역사와 전통, 그리고 브랜드 파워에 있어서 와인의 맹주는 여전히 프랑스이다. 미국의 나파밸리 와인이나 칠레와 호주 같은 신대륙의 야심에 찬 젊은 도전자들이 프랑스 와인 양조의 기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친 지 오십 년이 넘었지만 프랑스 와인의 아성은 여전히 굳건하다. 여기에 또 하나의 도전자가 있다. 21세기 들어 중국의 와인 생산량이 세계 톱10 안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중국은 이제 와인 생산량을 넘어 세계 시장에 통용될 수 있는 명품 와인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야심에 불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