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장생은 신선(神仙) 사상의 장생(長生) 개념을 차용한 우리 고유의 문화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오는 걸 보면 꽤 오래됐다. 고려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했고, 조선시대에는 서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성현(成俔)이 '송죽은 눈서리를 업수이 여기고 거북과 학은 장수로 태어났네'라고 읊었듯이 여기엔 자연과 동물이 다 포함돼 있다.
이 중 살아있는 동물은 거북과 사슴, 학이다. 사슴과 학이야 예부터 고아한 이미지이니 그렇다치고 왜 주변에서 보기 어려운 바다생물 거북일까. 무엇보다 100년 이상 사는 장수동물이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거북은 몸놀림이 느린 데다 이빨도 없고 비공격적이다. 그런데 오래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최근 화제를 모은 최장수 동물 10위를 보면 모두가 바다 생물이다. 가장 오래 사는 것은 해저(海底) 깊은 곳의 대양 대합이라는 조개로 평균 수명이 400년이라고 한다. 2위는 211년을 사는 북극 수염고래, 다음은 한볼락(205년)과 붉은 바다성게(200년)다. 이들 네 종의 수명이 200년 이상이다. 이어 갈라파고스 거북(177년), 쇼트래커 볼락(157년), 호수 철갑상어, 알다브라자이언트 거북(152년), 오렌지 라피(149년), 와티 오레오(140년)가 10위에 들었다.
대부분이 물 속에 산다는 게 신기하다. 바다 속 용궁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일까. 실제로 이들의 성장 속도와 생식 주기는 특별히 느리다고 한다. 암컷 호수 철갑상어는 14~33년이 지나야 생식을 할 수 있을 만큼 자라고, 알은 4~9년마다 한 번 낳는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영국 연구팀이 최근 밝혀낸 북극 고래의 장수 비결 중 하나도 '느림'이다. 몸 속에서 암과 노화를 가져오는 유전자의 변이가 천천히 일어난다는 것이다.
어디 물 속뿐만이랴. 잠깐 놀다 돌아왔더니 20년이나 지났더라는 일장춘몽 설화는 동서양 어디에나 많다. 시간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에 생긴 '착시(錯時)의 비밀'일까. 어쨌든 현대판 십장생을 보면, 천천히 걸어야 오래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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