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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장사익의 ‘기맥힌’ 인연

바람아님 2015. 4. 13. 19:37

[중앙일보] 입력 2015.04.13 















사진가 김녕만 선생이 저녁이나 같이하자며 연락이 왔다. 그러면서 꽃다발 하나 준비해 오라고 덧붙였다. 저녁 먹는 자린데 난데없는 꽃다발은 뭘까? 다 이유가 있을 터니 그리 준비해서 갔다.

도착해서 보니 작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장사익 선생의 유니세프친선대사 임명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꽃다발이 필요한 이유였다. 먹을 만큼 먹은 나이에 만나서 친구의 우정을 나누는 두 사람이다. 『장사익』이란 사진집을 따로낼 정도로 각별한 정을 나눈다. 한 개인의 사진으로만 사진집을 낸다는 일, 웬만큼 붙어다니지 않고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친구 장사익을 위해 손수 플래카드를 만들고 깜짝 축하자리를 만든 게다.

장 선생은 민망해 하면서도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기맥힌( 장선생은 기막히다는 표현을 충청도 식으로 항상 ‘기맥히다’고 발음한다.)인연 이야기로 답했다.
“예전에 신사동 카센터에서 일할 때 앙드레김 선생이 제 고객이었지요. 하얀 차를 수리해주고 수금하러 다녔시유. 그런데 가수 되고 연강홀에서 공연할 때 꽃다발을 보내 줬더라구요. 그리고 가끔 공연장에도 왔죠. 항상 앞자리에 앉았는데 그 큰 덩치로 벌떡 일어나 ‘앵콜’을 외치곤 했습니다. 이후로 제가 유니세프 자선 패션쇼에서 노래를 해주곤 했죠. 그런데 이번 친선대사 자리가 앙드레김 선생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라네유. 참 고맙고 기맥힌 인연이죠.”

마침 앉는 자리가 내 앞자리다. 귀동냥으로 장 선생의 인연들 이야기를 들은 터라 내친 김에 더 물어 봤다.
“연극배우 손숙 선생과의 일화도 있죠?”

“데뷔 하면서 신촌 예극장에서 1994년 11월 5일과 6일, 이틀간 공연을 했지. 첫날에 어떤 기자가 보고 가서 손숙 선생께 공연을 같이 가서 보자고 했는가벼. 그 양반이 하도 보채니 얼굴이나 한번 보여 주고 간다는 맴으로 왔는가벼. 나는 온 줄도 몰랐지. 근데 며칠 후에 누가 잡지를 오려왔어. 왜 있잖어 길거리에서 있던 ‘가로수’인가 뭔가 하는 잡지. 손숙 선생이 ‘이미자, 조용필만 가수인줄 알았더니 장사익도 있더라’고 게다 쓴 겨. 참 눈물 나게 고맙더라구. 일면식도 없는데 세상에 나를 알려준 거 아녀. 그래서 고맙다고 편지를 썼지. 나중에 만나서 얼굴 안보여주고 왜 그냥 갔냐고 물어봤지. 공연의 느낌이 깨질까봐 그 느낌 그대로 그냥 갔다고 하더라구. 그러면서 약속 하나만 해달라고 하데. 당신이 죽으면 ‘봄날은 간다’ 그거 하나만 해달라고 하는 겨. 요즘도 간혹 만나면 약속 있지 말라고 당부혀. 참 기맥힌 인연 이어가고 있는 게지.”

“작년 이십 주년 기념 공연 때 임동창 선생과 함께 했잖아요. 처음 시작을 같이 하셨죠?”
이십여 년 전, 그들의 기막힌 화답식 공연을 본 터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유명한 사물놀이패 김덕수를 쫒아 다닌 적 있어. 게서 임동창을 만났어. 공연하면 항상 뒤풀이가 있잖아. 뒤풀이에서 항상 노래 부르고 놀았지. 한번은 신촌 어느 중국집에서 판이 벌어졌는데,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임동창이 피아노로 반주를 하며 놀았지. 그런데 그 일이 참 흥미로 왔어. 일반적 반주가 아니라 내가 부르면 피아노로 화답하는 것 같았어. 나도 그랬지만 임동창도 기맥힌 경험을 한 겨. 그러다 어느 날 집으로 찾아 와서는 대뜸 한번만 세상에 나가라고 하는거여. 그렇게 시작된 겨. 녹음을 하고 음반이 나왔지. 참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겨. 사실 임동창 때문에 세상에 나온 겨. 그러다 서로 가는 길이 달라 각자 따로 길을 간 게지. 처음엔 한번하고 말 줄 알았는데 이만큼이나 온 겨. 아무리 가는 길이 달라도 20주년 공연은 당연히 임동창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참 기맥힌 경험과 인연 때문에 오늘까지 온 겨.”

한번 터진 궁금증이니 뿌리를 뽑고 싶었다.
“그전에 타악연주자 김대환 선생의 영향도 받았다고 들었는데요.”

“김대환 형이 김덕수랑 공연하고 그러면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나벼. 그러니까 1993년 이여. 노래를 한번 불러 보라는 겨.
‘송아지 송아지’ 또박또박 불렀더니 박자를 맞추지 말고 불러보라는 겨.
‘송~아~아 지 송~아~아 지’ 이렇게 했더니 속으로 박자를 세고 있다며 그 박자를 버려보라고 하는 겨.
머리를 도끼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
그래서 내키는 대로 불렀어. 그 덕분에 ‘찔레꽃’같은 리듬이 나오게 된 겨. 장사익표 내 맘대로 노래의 뼈대가 대환형님 때문에 만들어진 겨. 내가 내 맘대로 부르고 임동창이 지 맘대로 피아노 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된 자양분이 대환형님 덕인 겨.
그 형님 가신지 11년째여. 해마다 3월 1일이면 대환형님 추모 공연을 해오고 있는 게 다 이 기맥힌 고마움과 인연 때문이여.”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이미자 선생과 함께 공연한 게 화제였잖아요. 첫 곡으로 ‘동백아가씨’를 두 분이 함께 불렀잖습니까. 그 ‘동백아가씨’에 얽힌 사연도 있죠?”
언젠가 확인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다. 이왕 시작했으니 염치불구하고 계속 물었다.

“예전부터 ‘동백아가씨’를 참 좋아했어. 가끔 부르곤 했었는데, 3집 앨범 만들면서 기타반주에 녹음을 그냥 한번 해본 겨. 해놓고 보니 버리기가 아까운 거야. 근데 작곡가 백영호 선생이 이미자 선생 말고는 아무도 못 부르게 했다는 이야기를 풍문으로 들었지. 어떻게 보면 백영호, 이미자 선생의 자존심이니 함부로 건들지 말라는 얘기였어. 부딪혀나 보자는 심정으로 수소문해서 찾아간 겨. 중복 날이었는데 수박 두통 들고 낑낑거리며 찾아가 먼저 큰 절을 올렸어. 허락을 득하러 왔다고 했는데 대답을 안 하시는 겨. 허락대신 두어 시간 살아오신 내력만 들려주시는 거야. 그러더니 한번 들어나 보자며 3층으로 올라가 CD를 들어보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전 곡을 다 듣는 거여. 그냥 ‘동백아가씨’만 들어 보시지 다 듣는 겨. 그 시간이 참 길게 느껴지더라구. 다 듣고 허락 하실 줄 알았더니 허락은 않고 이거 어디서 녹음했냐고 묻는 겨. 서초동 어디라고 했더니 당신에게 소개 해달라는 거여. 그러고는 또 다시 듣는 겨. 환장하것데. 그러고 나서는 드디어 장씨가 한번해보라고 하데. 그렇게 된 겨.
난 꿈에도 생각 못했어. KBS 공사창립 42주년 특집콘서트에서 하늘같았던 이미자 선생과 ‘동백아가씨’를 함께 부를 줄이야. 참 기맥힌 곡에 기맥힌 인연인 게지.”

그리고 수일 후, 월간사진 예술 발행인 이취임 식이 있었다. 이명동 선생에게서 물려받은 김녕만 선생이 이기명 발행인에게 월간사진예술을 넘겨주는 자리였다. 사진계에서는 이 사실이 화제였다. 이명동, 김녕만 선생의 자제가 사진가다.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그 잡지를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사람에게 대물림한 게다. 더구나 흑자인 상태로 26년의 역사를 물려줬으니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 자리에 사진계와 하등 관련이 없는 장사익 선생이 참석했다. 친구 김녕만을 위해서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 꽃이 그득 핀 장관을 보니 저절로 봄꽃 노래가 터져나옵니다”라고 축사를 하고 축가를 했다. ‘아름다운 사람 꽃이 그득하다’는 기맥힌 표현만큼 기맥힌 인연들이다.

그리고 이취임 식이 있던 밤. 장사익, 김녕만 선생 둘이 나란히 또 나타났다. 명무 조갑녀 선생의 명복을 비는 상가에서다. 장 선생의 공연에서 생의 마지막 춤을 보여줬고 지난해 마지막 공연자리를 끝까지 지킨 조갑녀 선생, 그 분의 하늘가는 길에 소리를 올리러 온 게다.

물어봤다.
“웬만한 가수들은 무대와 음향 설비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노래를 안 하잖아요. 더구나 가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화내기 일쑤인데….”

말 끝나기도 전에 낚아챈다.
“봄·여름·가을·겨울은 삶 속에만 있는 게 아니고 노래 속에도 있는 겨. 그러니 삶의 희로애락도 노래에 담겨있는 겨. 초상집이든 막걸리집이든 삶을 풀어 낼 수 있어야 소리꾼이고 가수인 겨. 해마다 4월 1일이면 ‘조갑녀 데이’로 한바탕 놀 겨”
참 기맥힌 소리다.

기맥힌 인연 이야기에 기맥힌 소리를 듣다보니 ‘참 기맥힌 사람이다. 장사익!’ 소리가 절로 난다.

권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