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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경의 잊혀진 유라시아 이야기(6):사슴이야기① 깨끗하고 매끈한 사슴의 젖은 마치 아이를 낳은 여인의 유방 같았다

바람아님 2015. 8. 2. 21:25

(출처-조선일보 2015.06.05 오은경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신화 속의 사슴 이야기 ① 깨끗하고 매끈한 사슴의 젖은 마치 아이를 낳은 여인의 유방 같았다

사슴은 자의든 타의든 인간과 가깝게 지내온 동물이다. 
사슴은 인간과 아주 멀리 떨어져 살고 싶어 했겠지만 인간이 그렇게 허용하질 않아서였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자주 발견되는 만년 이상 된 바위그림에서조차 그렇게 느껴진다. 
넓적한 바위에는 사람들이 마치 진리를 추구하듯 사슴들의 뒤를 열심히 쫓아다니는 모습이 온통 묘사되어 있다.

왜 그랬을까? 물론 사슴고기 때문이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신라의 금관처럼 신비롭게 생긴 뿔 때문이었다. 
동물의 머리에서 나무가 자라나다니! 영물 사슴에 얽힌 유라시아 신화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유라시아 대륙을 남북으로 4000km나 가로지르는 예니세이 강이 있다. 이 강의 이름은 키르기스어로 
“에네 사이(어머니 강)”에서 나온 것이다. 마치 동남아시아 인들에게 “메콩”(어머니 강)과 같은 곳이다.

머나먼 옛날, 이 예니세이 강변에는 여러 부족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끊임없는 반목과 불화 속에 살았다. 
키르기스족은 그러한 부족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들은 서로서로 공격과 기습을 하며 곡식과 가축을 약탈하는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죽일 수만 있다면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몰살시키고 마는 시대였다.

키르기스 족장 물체는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부족 영웅이었지만 그에게도 죽음의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예니세이 강가에서 그를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서 떠나보내는 날 아녀자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남자들은 무릎을 꿇고 
통곡과 읍을 했다. 예니세이 강변 부족들에게는 아무리 적대관계라 하더라도 애도 기간만큼은 이웃을 습격하지 않는 원칙이 
있었다. 하지만 이날 그 원칙을 깨고 적의 무리가 상중인 키르기스족을 기습공격 하여 전원 몰살시켰다.

인간과 가깝게 지내온 사슴.인간과 가깝게 지내온 사슴.

그러나 그때 어른 몰래 숲 속에서 놀고 있던 두 명의 어린 키르기스 소년과 소녀는 천우신조로 
적의 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적의 한(khan)은 이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자 노발대발했다. 
절름발이 노파에게 아이들을 시퍼런 예니세이 강에 빠트려 죽이고, 키르기스족의 이름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지게 하라고 명령했다.

명령에 따라 노파가 아이들을 벼랑 아래로 떠밀어 버리려 하는 찰나였다. 
그때 엄마 사슴 한 마리가 원망에 찬 왕방울 눈으로 애처롭게 노파를 바라보고 있었다. 
산모의 모유처럼 뽀얀 색을 띤 사슴이었다. 
그 사슴의 뿔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었으며 늦가을 단풍나무가지처럼 운치 있게 뻗어 있었다. 
사슴의 젖은 깨끗하고 매끈했다. 마치 아이를 낳은 여인의 유방 같았다. 
이 사슴은 인간의 손에 의해 어린 쌍둥이를 잃어버린 엄마 사슴이었다.

사슴은 노파에게 아이들을 놓아 달라고 사정했다. 
노파는 이 아이들이 인간의 자식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사슴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사슴은 아이들을 데리고 울창한 수풀을 지나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초원을 통과하고 나서, 모랫바람이 부는 사막을 넘어 
폭풍우가 몰아치는 강을 건너갔다. 온갖 위험과 역경을 무릎 쓰고 만년설로 쌓인 산으로 다가갔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당도한 곳은 만년설 봉우리들 한가운데 위치한 뜨거운 바다 이식쿨 호수였다. 
엄마 사슴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자손 대대로 번성하여라!”
만년설이 보이는 초원 언덕에서 살고 있는 사슴 무리.
만년설이 보이는 초원 언덕에서 살고 있는 사슴 무리.
소년과 소녀는 장성하여 아이를 낳았다. 엄마 사슴도 이 고장을 떠나지 않고 함께 살았다. 
사람들은 엄마 사슴을 성녀처럼 존경했다. 이식쿨 호숫가 숲 속에는 하늘의 별마저 시샘할 만큼 아름답고 하얀 사슴들이 
인간과 조화롭게 살며 마음껏 활개를 치고 돌아다녔다. 인간은 사슴에게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그 누구도 사슴에게 불손하지 않았으며, 사슴을 보면 말에서 내려 길을 양보할 정도였다.
이러한 전통은 수만 마리의 양과 말을 소유하고 있던 어느 갑부가 죽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갑부가 죽자 그의 아들들은 거창한 장례식을 치렀다. 
호숫가에 천백개의 유목천막을 치고 세상에서 유명하다는 사람들은 모두 불렀다. 
아들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은 가축을 잡아 푸짐하게 대접을 해주며 으쓱거렸다. 
가수들은 고인과 그 아들들을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다. 
갑부의 아들들은 그들의 명성이 온 천지에 퍼지고, 그들의 영예가 이 세상 끝까지 도달하길 바랐다.

아들들은 묘안을 짜 냈다. 
아버지의 무덤 위에 신성한 사슴의 뿔을 장식하여, 뿔 달린 엄마 사슴이 자신들의 조상이라는 것을 자랑하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사냥꾼을 보내 사슴을 죽이게 하고 사슴의 뿔을 도려냈다. 
이어 그 뿔로 무덤을 장식하게 했다. 아들들은 항의하는 부족의 원로들을 채찍으로 때리며 개처럼 쫓아냈다.

이때부터 사슴들의 수난시대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숲속으로 들어가 하얀 사슴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사람들은 조상의 묘를 사슴뿔로 장식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그들의 본분으로 간주했다. 
급기야는 사슴의 뿔을 사고팔고 창고에 쌓아 두기도 했다. 사슴에게는 절망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궁지에 몰린 사슴들은 
사람이 오르지 못하는 가파른 벼랑 위로 도망쳐 보았지만 그곳에도 역시 사냥개나 사냥꾼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슴들이 사라지고, 산들이 텅 비어 가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사슴을 구경 한 번 못한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였다. 
인간들에게 진노한 엄마 사슴은 어린 사슴들을 데리고 이식쿨 호수와 영원히 작별을 고했다. 
이것이 유라시아에서 사슴이 인간을 등지고 떠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