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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주경철의 세계사 새로 보기] ⑥-2 소

바람아님 2015. 8. 9. 18:25

(출처-주간조선 2010.01.11 주경철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문화 | 주경철의 세계사 새로 보기] ⑥-2 소

고기에 굶주린 유럽, 소떼 몰고 신대륙으로

인디언 쫓아낸 곳마다 목장 들어서


:: 목초 사육에서 곡물 사육으로


그런데 신대륙에 소가 아무리 많다고 한들 쇠고기를 유럽이나 다른 지역에 내다팔 수는 없었다. 

냉동 설비가 아직 개발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몇 달 걸리는 항해 기간 동안 고기가 전부 썩었기 때문이다. 

판로가 막힌 상황에서 소들이 넘쳐나도록 많다 보니 소 한 마리를 잡아서 다른 부위는 다 버리고 혀만 잘라 요리해 먹는 

지경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가죽을 팔든지 혹은 선원이나 노예들에게 제공하는 하급 식품으로 육포를 만들어서 파는 

정도였다. 그러던 차에 19세기 후반 냉동선이 개발되면서 일대 변혁을 불러왔다. 1877년 프랑스의 엔지니어인 

샤를 텔리에는 증기선 프리고리피크호에 냉각 장치를 해서 아르헨티나의 쇠고기를 싣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프랑스의 루앙까지 항해했다.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냉동화물 운송 사례로 언급되지만, 사실 이 배는 항해 중에 

냉동 시스템이 고장나서 프랑스에 도착하기도 전에 고기가 다 썩어버렸다. 몇 달 후 암모니아 냉각제를 사용한 훨씬 

개선된 냉동 장치가 설치된 파라과이호가 완벽하게 보관된 냉동고기를 프랑스까지 운반하는 데 성공했다. 

드디어 신대륙의 고기를 유럽에 판매할 길이 열린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냉장차도 등장하여 멀리 떨어진 내륙 지역의 

목장으로부터 대도시와 항구까지 싸고 안전하게 고기를 운송할 수 있게 되었다.



▲ 인디언의 버펄로 사냥.

유럽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사람의 입맛은 그토록 간사한 것인가. 

이제 유럽의 소비자들은 단순히 쇠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부드러운 고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블링이 된 꽃등심처럼 고기 사이사이에 지방이 들어가도록 하는 게 좋다. 그런 고기를 얻기 위해서는 

일단 소들을 목초로 사육하다가 적당한 때부터 곡물을 먹여서 지방질이 늘어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때마침 미국의 중서부 지방에서는 옥수수 재배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옥수수가 남아돌아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옥수수를 소에게 먹이고 질 좋은 고기를 생산하여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 팔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한쪽에서는 당장 사람이 먹을 식량이 부족한데 다른 한곳에서는 엄청난 양의 곡물을 소에게 먹이는 일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 현대식 도축장의 등장


미국 중서부가 고급 육질의 소 사육 중심지로 발전하는 데에는 아직 걸림돌이 있었다. 

19세기 후반만 해도 이 지역에는 공격적인 인디언들이 버펄로 사냥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다시 한번 잔인한 사냥이 시작되었다. 우선 수백만 마리의 버펄로를 닥치는 대로 사살해서 거의 멸종 단계로 몰아갔다. 

버펄로를 주식으로 하는 인디언들은 존립 기반을 상실했고, 더 나아가서 미국 기병대의 잔혹한 인간 사냥의 희생자가 되었다. 

이전 주인이 떠난 자리에는 소가 들어왔다.


20세기 들어 미국은 엄청난 양의 쇠고기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 수많은 소를 죽이고 몸통을 해체하고 포장하여 수송해야 했는데, 사실 이것은 보통 큰 일이 아니다. 

이전에는 소를 한 마리 잡으려면 망치로 급소를 친 다음 칼로 찔러서 죽기를 기다렸다가 

푸주한들이 달려들어 뼈와 내장을 떼어내고 고기를 나누는 일을 했다. 

당연히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그 많은 소를 일일이 도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결국 도축의 ‘산업화’가 이루어졌다. 

현대식 도축장에서는 컨베이어에 소를 매달아 이동하는 동안 인부들이 각자 정해진 과정에 따라 소를 해체하면서 

기계적으로 절단·세척·포장을 해나갔다. 헨리 포드가 바로 이 소 도축 공정을 모방해서 자동차 조립 공장을 만들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 로스트 비프


그 과정이 과연 위생적이었을까? 

업튼 싱클레어는 1906년에 시카고의 쇠고기 도축·포장 작업장에서 일어나는 비리와 계급갈등, 비위생적 작업과정을 

고발하는 소설 ‘정글’을 출판했다. 여기에는 화학약품으로 쇠고기를 세척하고, 수챗구멍에 걸려 있는 고기 찌꺼기들까지 

삽으로 긁어모아 운반차에 싣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새끼를 낳는 어미 소, 다리가 부러진 소, 어떻게 죽은지도 

모른 채 시체가 되어 도착한 소까지 모두 모른 척 처리된다. 미국식품의약품위생법이 제정되고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설립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현대 인간이 다른 생물과 맺는 관계가 해괴하게 

변화되었음을 말해준다.


:: 육식바람 부른 일본의 메이지유신


오늘날 미국인들은 1년에 1인당 150파운드 이상의 고기를 소비하는데 그중 60% 이상이 쇠고기이다. 

문제는 경제 성장에 성공한 국가들이 대개 미국과 같은 과다한 고기 소비 방식을 따라간다는 데에 있다. 

일본은 그 가운데서도 아주 흥미로운 사례이다. 19세기에 서구의 충격을 강하게 받으며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였던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모든 면에서 서구를 따라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우선 그들의 몸이 서구인보다 

왜소하다는 점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음식의 차이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고 생각했다. 

사실 일본은 불교의 영향 때문에 7세기 이후 무려 1300년간 육식이 금지되어 있었다.(살생을 금지한다는 이유이지만 

어패류는 예외라고 하는 다소 이상한 논리이다!) 그러던 것이 메이지유신 이후 문명개화를 위해서는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정부가 선전에 나섰고, 지식인들도 여기에 동참하여 육식을 옹호하는 계몽 활동을 부지런히 했다. 일본 근대화론의 선구자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대표적인 육식 옹호론자였는데, 놀랍게도 아예 벼농사를 폐지하고 목축 위주로 나가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을 폈다. 스키야키와 전골 같은 일본 특유의 쇠고기 요리도 이 시기에 개발되었다. 

최고급 육질의 쇠고기를 얻기 위해서 특이한 방법도 등장했는데, 예컨대 다지마(但馬)의 송아지를 3년 사육하되 

마지막 한 해는 맥주를 먹이고 마사지를 해주어서 살 속으로 지방분이 점점이 들어가도록 했다.

(결국 스키야키로 생을 마감하겠지만 그래도 맥주 마시고 마사지 받는 동안은 행복했을 것 같다). 

이런 것이 발전하여 오늘날 고급 육질로 유명한 와규(和牛)로 발전했다.


이처럼 과도하게 쇠고기를 소비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오늘날 전세계에는 12억마리 이상의 소가 사육되고 있다. 이 소들이 먹는 사료는 사람 수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선진국에서 쇠고기 소비만 대폭 줄여도 굶어죽는 사람을 많이 

살릴 수 있다. 또 목장이 세계 경지의 4분의 1을 차지하게 되면서 삼림도 줄어들고 공해도 심각해졌다. 

또 육식이 증가하면서 전에 없던 병도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우리 시대에 가속화되는 이런 일들은 

인류 역사 전체의 큰 흐름에서 보면 지극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우리 몸의 건강과 사회의 건강, 크게는 

지구의 건강을 위해서 분명 육식을 절제해야 한다.




주경철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서양사학 석사.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박사(네덜란드사 전공). 

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문화로 읽는 세계사’ ‘대항해시대’ ‘네덜란드’ ‘문명과 바다’ 등 

저서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