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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교수 명랑笑說] 툭하면 '스미마셍' 남발하는 일본인… 강요된 근대화의 희생양

바람아님 2015. 8. 23. 07:22

(출처-조선일보 2015.08.22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남정욱 교수 명랑笑說]

전 세계에서 일본을 대놓고 무시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한다. 
객관적인 지표만 놓고 보면 병원에 가 봐야 한다. 그런데 실은 좀 무시해도 된다. 
그 나라, 애초부터 '제국'이 될 수 없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리더가 돼 보겠다고 설치는 바람에 동남아 여러 나라가 골병이 든 게 20세기 중반까지 동아시아의 역사다.

한 나라가 제국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군사력, 경제력, 문화력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은 저 혼자 노력해서 갖추면 된다. 그러나 문화력은 다르다. 
주변의 나라들이 그 나라의 문화를 부러워하고 기꺼이 그 나라의 일부가 되기를 바라야 비로소 제국이 된다. 
아테네가 그랬고 로마가 그랬으며 현재의 미국이 그렇다.

일본은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나라였던가. 아주 잠깐 그랬다. 
개화기의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서양의 문명으로 치장된 일본을 롤 모델로 삼았다. 
그러나 진짜 잠깐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도무지 문화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게다가 일본은 자기들보다 식민지가 수준이 높은 것을 두고 보지 못했다.
주변의 앞선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별짓을 다했다.

일러스트
선순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제국이 주변 나라들을 포용해야 한다. 일본은 그러지 않았다. 
자기들은 일등 국민이었고 자기네가 점령한 나라들은 이등 국민이었다. 
차별이 없고 누구나 능력이 있으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어야 그게 제국이다.

로마는 바로 옆의 산악 민족인 삼니움과 40년이나 전쟁을 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로마는 삼니움을 모욕하는 대신 시민권을 나누어줬다. 
종전 20년 후 오타릴리우스 크라수스라는 사람이 집정관 자리에 오른다. 
그는 로마의 귀족이 아니라 삼니움 농부 출신이었다. 개방과 혁신이 제국의 기본 조건이라는 얘기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35년간이나 지배했다. 
로마식으로 하자면 그 기간에 능력 있는 한국인이 총리 자리에 올랐어야 했다. 
몽골의 칭기즈칸은 양아버지에게 배신을 당하고 겨우 열아홉 명의 지지자들과 필사의 탈출을 했다. 
이윽고 발주나 호수에서 한숨을 돌린 칭기즈칸은 호수의 흙탕물을 나누어 마시며 그 유명한 발주나 결의를 한다. 
충성을 다하고 신의를 지키자는 맹세로 삼국지의 도원결의에 이은 중국 최고의 이벤트다.

이 열아홉 명 중 몽골인은 한 명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다른 씨족 출신이었다(그나마 그 한 명도 칭기즈칸의 친동생이다). 
씨족을 중시하는 몽골 전통에서 보자면 파격도 이런 파격이 없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조건을 문제 삼지 않는 것, 그게 몽골 제국이 세계를 제패한 진정한 동력이다. 
일본이 어쨌는지는 따져볼 필요도 없겠다.

어떤 분들은 일본인들에게 배울 것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와 민폐 기피를 꼽는다. 
자기 아들이 테러 집단에 인질로 잡혀 목숨이 간당간당하는데도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절절매는 노모의 모습은 
얼핏 그렇게 보인다. 이것은 미덕이 아니라 병(病)이다. 강요된 근대화의 결과다.

일본은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근대화를 추진했고 그 사이 자유로운 '개인'은 사라졌다. 
그래서 '나'보다 '우리'를 더 앞세우며 툭하면 '스미마셍(죄송합니다)'을 남발하는 것이다. 칭찬할 일이 전혀 아니다. 
하여 일본이 주변 나라들에 과거사에 대해 말한다면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 
"죄송합니다. 깜냥도 모르고 주제넘게 굴었습니다."


<각주 : 깜냥 _ [명사] 스스로 일을 헤아림. 또는 헤아릴 수 있는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