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주간조선 2010.01.11)
[문화 | 주경철의 세계사 새로 보기] ⑥-1 소
고기에 굶주린 유럽, 소떼 몰고 신대륙으로
인디언 쫓아낸 곳마다 목장 들어서
인류 문명의 초기부터 소는 실제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가장 중요한 동물 중 하나였다.
고대 이집트의 아피스나 수메르의 엔릴 같은 황소 신들은 강력한 힘으로 적들을 물리치고 지상에 풍요를 가져다주는
최고 권좌의 신들이었다. 제우스신도 흔히 황소 형상으로 변하여 여신들을 유혹하곤 하지 않던가.
더 극적인 사례로는 고대 그리스에서 널리 유행하던 디오니소스 축제 때 신도들이 밤새 춤추다가 살아있는 소에 달려들어
맨손으로 소를 죽이고 날고기를 먹는 행위를 들 수 있다. 이는 소의 신성한 힘을 인간들이 나누어 갖는다는 의미로 보인다.
많은 사회에서 벌건 육즙이 도는 쇠고기는 남성성 혹은 귀족 전사의 지배력을 나타낸다.
:: 인도에서 쇠고기를 금지한 진짜 이유
정반대로 힌두교를 믿는 인도에서는 쇠고기를 먹는 것이 금기지만, 사실 그 이유는 다른 문명권과 다르지 않다.
소를 너무 신성시하다보니 아예 인간이 먹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상징적인 의미 뒤에 언제나 물질적·실제적 이유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설명을 제시한다.
기원전 1750년경, 천둥과 폭풍의 황소 신 인드라를 숭배하는 유목민족인 아리아인들이 인도에 들어와 정복민이 되었다.
이때만 해도 쇠고기 섭취는 금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배계급인 브라만은 제사를 지내고 난 후 선주민들에게 쇠고기를
나누어줌으로써 충성을 확보했다. 그런데 점차 이 지역의 인구가 급증하여 곧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으로
변모해갔다. 산림은 헐벗고 토양 침식으로 지력이 고갈되는 데다가 목초지도 귀해져서 농민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꼭 필요한
소를 키우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 귀한 소를 브라만 계급이 계속 도축하여 먹는 데 대해 민중계급이
저항했다. 이럴 때 새로 등장한 불교는 바로 그런 점을 파고들었다. 불교는 가난한 하층민들의 구원을 설파할 뿐 아니라
살생을 금하는 교리를 펼침으로써 실생활에 필요한 소를 보호하고자 한 것이다. 결국은 힌두교가 다시 교세를 확보하여
인도의 주도적인 종교로 복귀했지만, 이때 힌두교는 경쟁 상대였던 불교의 주장을 많이 받아들여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신성한 암소를 죽이는 행위는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중죄가 되었다. 실수로 죽인 경우에도 엄벌을 피할 수 없어서,
자신이 죽인 소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외양간에 한 달 동안 갇혀서 매일 암소들 뒤를 쫓아다니며 발굽에서 일어나는 먼지를
꾸역꾸역 삼켜야 한다.
▲ 호주의 목장에서 방목 중인 소떼.
:: 영국·프랑스의 고기 요리 대결
과거에는 어느 문명이든 고기는 아주 귀한 음식이었고 서민들이 먹는 음식은 대부분 곡물 종류였다.
날이면 날마다 빵이나 밥, 죽을 먹는 것, 혹은 지역에 따라서 감자나 옥수수만 계속 먹는 것이 서민들의 운명이었다.
그나마 비교적 자주 육류를 접했던 곳은 유럽이었다. 벼농사를 하는 아시아나 옥수수농사를 하는 아메리카 대륙과 달리
유럽에서는 농경과 목축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서민들이 신선한 고기를 맛보는 것은 드문
일이어서, 겨울나기 준비를 하는 가을철에 잠깐 고기 맛을 보는 정도였다. 겨울을 나기에는 목초가 부족하기 때문에 10월이
되면 종자를 보존할 짐승만 소수 남기고 나머지 짐승들을 잡아야 했다. 이때 한 보름 정도 농민들은 살코기와 피, 내장을 먹고,
나머지 고기는 전부 염장처리를 했다. 따라서 일반 서민들이 먹는 고기는 대개 염장 고기였고, 연중 신선한 고기를 먹는 것은
부유한 귀족이거나 대도시의 중산층 이상 시민들이었다. 유럽의 고급 음식 문화는 궁정과 대도시 상층 부르주아의 일이었지
일반 서민과는 거리가 멀었다.
▲ 에우로페를 납치하는 소 형상의 제우스.
2005년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영국을 비판하면서
“그처럼 요리를 못 하는 사람들을 신뢰할 수는 없다”는 말을 해서 일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예전에 드골 대통령이 처칠에게 했다는 유명한 말(“246가지나 되는 다양한 치즈를 가진
나라 프랑스를 어떻게 잘 다스릴 수 있겠소?”)과 비교해 보면 다소 격이 떨어지는 편인
데다가, 이제는 그 말이 맞다고 할 수도 없다. 오늘날 영국은 다양한 일급요리를 많이
개발해서 결코 요리를 못하는 나라가 아니다. 분개한 영국 언론은 그 다음날
‘유명 맛집(celebrity chef)’ 목록을 지상에 공개했다. 영국 요리가 프랑스 요리만 못하다고
자타가 공인했던 것은 과거의 일이다.
영국이 고급 요리 개발에 뒤처졌던 이유는 청교도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정점을 이루었던
이 문화에서는 쾌락 추구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았고, 따라서 ‘먹는 즐거움’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것 역시 단정치 못한 일로
여겼다. 프랑스에서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이라는 이름으로 세련된 요리가 발전할 때 영국에서는
‘참담하도록 창의력이 부족한’ 요리만 고집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영국인들이 자국 음식에 대해 자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프랑스에서는 아직 쇠고기가 사치품이던 때에 영국에서는 점차 많은 사람들이 풍부하게 쇠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프랑스인들은 영국인을 ‘로스비프(rosbif·roast beef를 프랑스식으로 읽은 말)’라고 불렀는데, 여기에는 분명 부러워하는
심정이 섞여 있다. 고기든 야채든 다소 과도하게 푹 익히는 나쁜 버릇은 있지만, ‘인위적이지 않고 정직한’ 영국 음식은 분명
더 건강한 음식임에 틀림없다. 18세기 영국의 문인 헨리 필딩(Henry Fielding)은 1731년에 ‘잉글랜드의 구운 고기(The Roast
Beef of Old England)’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영국인들은 훌륭한 쇠고기 구이를 먹기 때문에 영혼이 고양되고 피가
풍요로워진다. 군인들은 용맹하고 궁정인들은 사려깊다.…
그렇지만 경솔한 프랑스인들에게서 스튜 요리와 그들의 춤을 배운 다음부터 우리 모두 헛된 자만심만 늘었다.’
:: 소떼에 쫓겨난 인디언들
그러나 18~19세기에 영국인 모두가 쇠고기를 많이 먹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때에도 역시 노동계급의 주식은 빵과
감자에 마가린이나 버터, 그리고 생선(주로 저급품 대구)이 더해졌으니, 이게 유명한 ‘생선과 감자튀김(fish and chips)’이다.
그나마 돈을 벌어오는 남자 가장은 간혹 고기 조각과 베이컨을 먹을 권리를 누렸지만, 여성과 아이들은 오히려 사정이 더
악화되었다. 고기는 가장에게 양보하고 대신 설탕을 잔뜩 입힌 밀가루 음식들로 부족한 영양을 보충하였던 것이다. 유럽의
고기 사정이 나아진 것은 19세기 후반에 아메리카와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 냉동 육류를 수입하게 된 이후의 일이다.
▲ 버펄로 사살 후 모은 뼈.
통칭 신대륙이라 부를 수 있는 이곳들은 구대륙의
인간들과 그들이 앞세운 동물들이 들이닥치면서 일대
재앙을 만났다. 아메리카의 인디언, 호주의 애버리지니
(Aborigine), 뉴질랜드의 마오리족(Maori) 등은 유럽인
침입자들에 의해 대거 학살당했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제한된 구역으로 밀려나서 살게 되었다.
인구가 희박해진 광대한 땅에는 유럽산 소와 말, 양 등을
키우는 대규모 목장이 들어섰다.
결국 동물이 사람을 쫓아낸 셈이다.
아메리카에 도입된 소는 스페인산 롱혼(Longhorn)
종류였는데, 워낙 강인하고 튼튼해서 신대륙의 야생 환경에 아주 잘 적응하여 번식했다.
목초도 먹기에 알맞았고, 빈 땅에 풀어놓아도 이 소들을 잡아먹을 대형 포식 동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거의 야생으로 되돌아간 이 소들은 어찌나 성격이 거친지 송아지들은 웬만한 높이의 담장을 뛰어 넘어 달아났고,
거친 벌판에서 자기네들끼리 어울려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카우보이, 가우초, 바케이로 등 각 지역마다 다르게 부르는
소치는 사람들은 야생 상태에 가까워진 소가 얼마나 영리한지 잘 알고 있었다. 소들은 사냥개 못지않은 후각을 가지고 있어서
60㎞ 떨어진 곳의 물웅덩이를 감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소를 잡는 것은 거의 사냥에 가까운 일이었다.
1700년경 남미의 팜파 지역에는 이런 소가 5000만마리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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