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8.15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김시덕의 종횡무진 인문학] 메리 테일러 '호박 목걸이'
내가 사랑하는 서울은 어떤 곳일까? 예컨대 풍납토성.
그곳에는 고대의 토성과 중·근세의 마을과 현대의 고층 아파트가 겹쳐 있다.
외국인 친구들을 풍납토성으로 안내할 때마다
그들은 "왜 이제까지 한국인들은 이 멋진 곳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을까?"라며 놀라워한다.
또는 이런 코스는 어떨까?
구한말의 역사를 전하는 덕수궁 일대를 돌아본 뒤 정동 사거리를 건너면 김구 선생의 경교장이
대형 병원 가운데 들어서 있다. 그 오른쪽 언덕길을 천천히 오르면 1933년에 세워진 기상청 건물과
홍난파 가옥이 나온다. 이제까지 초심자 코스였던 답사의 난이도가 여기부터 갑자기 높아진다.
사직터널 위로 난 골목길을 꼬불꼬불 헤매다 보면 권율 장군이 심었다고 하는 수령(樹齡) 400년의
은행나무에 다다르게 된다.
나무 아래서 한숨 돌리다 보면 골목길 끄트머리에서 붉은 벽돌로 예쁘게 세운 가정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호박 목걸이, 작가 메리 린리 테일러, 출판 책과함께, 발매 2014. 3. 5.
딜쿠샤(Dilkusha). '기쁨'이라는 뜻의 힌디어 이름이 붙은 이 건물을 세운 이는
미국인 기자 앨버트 테일러와 영국인 연극배우 메리 테일러였다.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1917년에 한국으로 온 테일러 부부는 두 사람의
미래를 이 땅에 맡기며 딜쿠샤를 지었다. 1919년에 3·1운동이 발발하자
앨버트는 독립을 지향하는 조선인들의 열망을 세계에 알렸다.
이 때문에 이들은 1942년에 한국에서 추방당했다. 그리고, 광복.
그때의 풍경을 메리는 '호박목걸이'(책과함께)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떠돌이들과 피란민들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고,
딜쿠샤는 엄마 품처럼 그들을 품어 주었다.'
메리는 남편을 금광업자였던 시아버지 조지 테일러가 묻힌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그녀는 마지막으로 딜쿠샤를 찾았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가 우리의 텅 빈 방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포치로 나가 관악산을 바라보며 섰다.
비둘기들의 부드러운 노랫소리조차 없으니 그곳은 너무 고요했다."
그들처럼 딜쿠샤에 서서 숱한 조선인과 한국인의 슬픔이 서린
옛 서대문형무소 건물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도 좋겠다.
풍납토성 위치
딜쿠샤(Dilkusha) 위치
게시자가 찍은 딜쿠샤 전경(20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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