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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피 묻은 적삼

바람아님 2015. 8. 7. 08:32

경향신문 2015-8-6

 

1933년 2월27일 오후 3시45분, 하얼빈 교외에서 거지 차림의 노파가 일제경찰에게 붙잡혔다. 속에 피 묻은 삼베 적삼을 입고 있었다. 권총과 비수, 폭탄도 나왔다. 독립투사 남자현 선생(1873~1933)이었다. 선생은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만주국 전권대사 부토 노부요시(武藤信義)를 암살하기 위해 중국거지로 변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인 밀정 이종현의 밀고로 수포로 돌아갔다. 61살이었다. 선생은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17일간이나 단식투쟁으로 버티다 순국했다. 밥을 내미는 일경에게 호통을 쳤다. “조선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 죽음은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부적처럼 입은 ‘피 적삼’은 의병투쟁에 참전했던 남편 김영주가 전사한 1896년 입었던 옷이다.

 

남편을 잃고 47살의 나이에 만주로 떠난 남자현 선생은 ‘독립군의 어머니’였다. 조소앙이 쓴 <여협 남자현전>은 “1925년 남자현 선생이 단원 4명을 이끌고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의 암살미수사건을 주도했다가 실패한 뒤 가까스로 탈출했다”고 소개했다. 선생의 ‘단지(斷指) 혈서 투쟁’은 유명하다. 1920년대 만주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운동이 부진하자 선생은 분연히 일어나 혈서를 쓴다. “선생이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글을 써서 책임자들을 소집했다. 간부들 모두 그 뜨거운 눈물과 죽음을 각오한 피의 설유에 잘못을 회개하고….”(‘독립운동의 홍일점-여걸 남자현’, ‘부흥’-1948년 12월호) 그뿐 아니었다. 1932년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우자 국제연맹은 하얼빈에 조사단을 파견했다. 선생은 또 한번 좌우 손가락을 끊어 ‘朝鮮獨立願(조선독립을 원한다)’는 혈서를 써서 조사단에 보내려 했다. 그러나 삼엄한 경비 속에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런 시가 있다. “…동포여, 무엇이 그리 바쁘뇨/ 황망한 발길을 잠시 멈추시고/ 만주벌에 떠도는 남자현의 혼백 앞에/ 자유세상 밝히는 분향을 올리시라”(시인 고정희의 ‘남자현의 무명지’). 23일까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남자현 선생을 포함한 266명의 여성독립운동가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힘들고 바쁜 일상이지만, 한번 둘러보고 이들의 혼백을 만나 기운을 얻으면 좋을 것이다.

 

<이기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