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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의 맛 세상] 極과 極은 통한다

바람아님 2015. 9. 24. 11:49

(출처-조선일보 2015.09.24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스웨덴 청어 통조림, 홍어 포함 '세계 5대 악취 음식' 리스트
몹시 싫어하는 사람 많은 만큼 중독된 열렬한 마니아도 넘쳐나
당신에게 최악의 음식이라도 누군가에겐 최고일지도 모른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사진음식전문기자라고 하면 "맛난 것만 잔뜩 먹고 다니겠군"이라며 다들 부러워한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찾으려면 그만큼 맛없는 음식도 많이 먹어야 하는 것이 이 직업의 애로사항이며, 

그로 인한 과체중·비만은 산업재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고 경력이 쌓이면서 맛없는 식당은 미리 감지해 들어가지도 않는 확률이 높아지기는 했다.

맛있는 걸 찾다가 어쩔 수 없이 맛없는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일부러 맛없는 음식을 찾아서 먹는 인물이 쓴 책을 흥미롭게 펼쳐들었다. 

도쿄농업대학에서 오래 강의했으며 발효학자인 고이즈미 다케오(小泉武夫)씨가 쓴 

'맛없어?'(사과나무)란 책이다. 

맛없는 음식을 시식하는 자신의 변태적(?) 취미에 대해 고이즈미씨는 "결코 흥미를 끌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며 

"여러 맛없는 음식과의 대결을 통해서 그 본질이 대체 어디에 깃들어 있는지, 또 원인과 요인은 무엇인지를 앎으로 해서 

'맛이란 무엇인가'라는 좀 더 근본적인 것을 살펴보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책 서문에서 당당히 밝히고 있다.

고이즈미씨가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한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은 스웨덴의 수르스트뢰밍(surstrømming)이다. 

세계 최고의 악취(惡臭) 음식을 꼽을 때 언제나 1위를 차지한다. 

냄새가 도대체 얼마나 심하길래? 냄새의 강도를 측정하는 앨러배스터(Alabaster)라는 정밀 기계가 있다. 

이 기계로 측정한 냄새의 수치를 표시하는 단위를 AU라고 한다. 물론 숫자가 높을수록 냄새가 강하다. 

수르스트뢰밍은 무려 8070AU이다. 

참고로 하루 종일 신고 다니다 갓 벗은 남성 구두 냄새가 187AU, 경기를 마친 야구선수의 운동 양말이 420AU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수르스트뢰밍은 쉽게 말해서 청어 통조림이다. 청어에 소금을 약간 첨가해 커다란 용기에 1차 발효시킨다. 
발효가 한창 진행될 때 통조림에 옮겨 담는다. 보통 통조림은 밀봉한 뒤 가열 살균해 캔 안의 미생물을 사멸시킨다. 
수르스트뢰밍은 가열 살균을 하지 않는다. 깡통 안에 살아있는 발효 미생물이 활동을 계속하면서 2차 발효가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탄산가스의 압력 때문에 깡통은 팽팽하게 팽창해 기이하게 둥그런 형태를 띠게 된다.

음식전문기자이지만 부끄럽게도 수르스트뢰밍을 맛보진 못했다. 
대부분 국가에서 수입이 금지됐고, 스웨덴에 아직 가지 못했다. 
가열 살균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생상 문제가 있을 수 있는 데다 언제든 터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자칫 폭발하면 지독한 악취가 주변을 가득 채우고, 옷에 튀면 아무리 빨아도 냄새가 빠지지 않아 버리는 편이 낫다고 한다.

고이즈미씨는 물론 수르스트뢰밍을 먹어봤고, 그 맛을 이렇게 묘사한다. 
"은행알을 밟아 짓뭉갰을 때의 냄새에다 말린 고등어 즙을 뿌리고 똥냄새를 더한다. 
또한 거기에 강렬한 생선 젓갈 냄새를 뒤섞은 듯한 냄새다. 
맛은 생선 젓갈 같은데 거기에다가 탄산수를 섞은 것 같은, 참으로 괴상한 맛이다."

그는 세계 최고의 악취 음식 2위로 한국 홍어를 소개했다. 앨러배스터 수치가 6230AU였다. 
고이즈미씨는 홍어를 맛보러 일부러 전남 목포를 세 번이나 찾았다고 한다. 
"입에 넣고 씹는 순간 격렬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쿡!! 하고 찌르더니 머리에도 쿵!! 하고 충격이 왔다.
 …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나는 항상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던 만능 페이퍼(pH) 리트머스시험지 한 조각을 
꺼내 그것을 콧구멍 앞에 놓고 콧김을 흥! 하고 내뿜어보았다. 
그 결과를 보고 놀라 자빠질 뻔했다. 놀랍게도 그 만능 페이퍼 시험지가 순식간에 짙은 파란색으로 변해버렸던 것. 
… 그렇게 강렬한 암모니아가 콧구멍으로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호기심이 발동해 인터넷을 뒤져보니 '세계 5대 악취 음식' 리스트란 게 있었다. 
1위는 수르스트뢰밍, 
2위는 홍어, 
3위는 뉴질랜드의 에피큐어 치즈 통조림(1870AU), 
4위는 바다표범 배 속에 바다제비·북극뇌조 등을 넣고 발효시킨 에스키모 음식 키비악(kiviak·1370AU), 
5위는 생선을 소금에 절였다가 발효시킨 일본 전통 음식 구사야(1267AU)였다.

세상에서 가장 냄새가 심하다는 다섯 가지 음식을 살펴보니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는 생선·우유·날짐승 등 동물성 단백질을 원재료로 하며, 
둘째는 발효 식품이란 점이다. 
셋째는 싫어하는 사람이 아주 많지만 동시에 엄청나게 좋아하는 마니아적 애호가 역시 존재해서 
호불호(好不好)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음식들이다. 
그리고 일단 맛을 들이게 되면 '중독'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즐기고 찾게 된다.

수르스트뢰밍은 스웨덴에서도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는 사람이 많지만 
좋아하는 이들은 너무나 좋아해서 매년 여름 수르스트뢰밍 축제가 열릴 정도다. 
홍어 역시 입에 대지도 못하는 한국 사람도 있지만 홍어가 빠지면 잔치가 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열렬한 사랑을 
호남에서 받고 있다. 
기자도 사회생활을 하기 전까지 홍어를 맛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매달 홍어 먹는 모임을 가질 정도로 홍어 맛에 중독됐다.

세계 최악의 음식을 살펴보고 얻은 결론은? 
당신에게 최악의 음식일지라도 타인에게는 최고의 음식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극(極)과 극은 통한달까. 맛없다고 미리 단정하지 말고 맛부터 보자. 참고 씹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