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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움 넘어 고달픈 한국의 노년

바람아님 2015. 9. 25. 08:03
한국일보 2015-9-24

노인 인구 2017년 유소년 앞서지만
연금 수입은 먹고 살기에 크게 부족
의료비는 10년 전보다 2배 이상↑
"아파도 생계노동 멈출 수 없어"
작년 60~64세 고용률 20대 첫 추월
황혼 이혼·자살률도 꾸준히 증가


한국이 늙어간다는 건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고령자(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3.1%로 고령사회(고령인구 14% 이상)를 눈앞에 뒀고, 2017년에는 고령 인구가 유소년(0~14세)을 앞지를 전망이다.

급속한 고령화보다 더 큰 문제는 한국에서의 늙음은 결코 은퇴와 안식의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소득이 줄고 연금은 적은데, 의료비 등 부담이 커지면서, 노년층이 돼도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멈출 수 없다. 황혼 이혼이 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도 늘었다.

젊어선 나라가 못 살아 고생했고, 나이 들어선 세태가 달라지고 사회안전망이 미약해 생업전선에서 물러설 수 없는 한국 노년층의 팍팍한 현실은 24일 통계청이 내놓은 '2015년 고령자 통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유소년 인구 100명당 고령자 수를 의미하는 고령화지수는 1990년 20.0명에서 올해 94.1명으로 늘고, 2017년 104.1명이 된다. 아이보다 노인이 많은 사회가 된다는 얘기다.

고령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의 연금 수입은 생계충당에 턱없이 모자란다. 올해 5월 기준 연금을 받는 고령자가 532만8,000명인데, 이 중 50.6%인 269만5,000명이 월 10만~25만원을 받는데 그쳤고 132만7,000명(24.9%)이 25만~50만원을 받았다. 10만원을 채 못 받는 이도 8만2,000명에 달했다. 고령자 중 기초생활수급자는 지난해 37만9,000명으로 전체 수급자 중 30.6%다. 고령자 인구 비율이 13.1%(올해)인 점을 감안하면 고령자 빈곤 정도가 더 심각함을 알 수 있다.

노년에 병치레에 쓰는 돈은 갈수록 증가세다. 지난해 고령자 1인당 진료비는 322만원이다. 2005년 154만원이었는데 10년이 못 되어 두 배 이상 뛴 셈이다.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에서 정장 차림의 한 노인이 휴대폰 통화를 하고 있다.

그러니 한국의 고령층은 아프고 힘들어도 생계노동을 포기할 수 없다. 60세 이상 고용률은 꾸준히 증가 추세다. 직장에서 퇴직했다 생계 때문에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 때문인데, 지난해 60~64세 고용률은 58.3%로 20대(57.4%)를 처음 추월했다. 55~79세 고령층에 "왜 일을 하려느냐"고 물었더니, 57.0%가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서"라고 답해 "일하는 즐거움"이란 답(35.9%)을 압도했다. 고령층에게 평생 다닌 직장 중에서 최대 근속기간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평균 14년9개월에 그쳤다. '평생 직장' 개념이 뿌리깊던 시절이었지만 이 직장 저 직장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노년의 그늘을 보여준 숫자는 이뿐이 아니다. 2000년 1,321건에 그쳤던 65세 이상 이혼 건수가 지난해 5,914건으로 네 배 이상 증가했고, "이유가 있으면 이혼하는 게 좋다"라고 답한 노년층 비율이 2008년 2.7%에서 지난해 7.7%로 올랐다.

젊어 힘들고 늙어 고달픈 인생을 자살로 마감하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65세 이상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55.5명인데, 이는 전체 평균 27.3명의 두 배 수준이다. 80세 이상 자살률(78.6명)은 전 세대에서 가장 높았다.

세종=이영창기자 anti092@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