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그대, 가을이 온 걸 어떻게 아시나요?

바람아님 2015. 9. 22. 00:14

[J플러스] 입력 2015.09.21 

 

               -한경철교 근처에서 바라본 가을의 코스모스. 너머로 63빌딩이 보인다.


사람들은 가을이 왔다는 걸 어떻게 알까.

오랜만에 한강으로 자전거를 타러 다녀왔다. 보통 한강망원지구에서 반포대교 쪽으로 다녀오곤 했다. 자전거를 안 탄 지 한 달은 족히 된 것 같다. 조금은 차가워진 바람 빼고 여전히 한강은 한강다웠다. 적당히 어두운 배경 속에 적당한 연인들과 적당한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 그리고 정말 운동만을 위해 이곳에 왔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이어폰을 낀 채 앞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사람들. 익숙한 풍경에 자전거에 오른 내가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사람들은 가을이 왔다는 걸 어떻게 느낄까. 그냥 무더웠던 8월이 지나고 말복도 지나고 9월이니까? '가을이 왔다는 걸 너는 어떻게 아느냐'는 물음에 동기인 이가혁 기자는 '추워'하고 답했다. 해석하자면 '춥잖아. 가을은 여름보다 추워. 여름 옷으론 추우니까 가을이지.' 이쯤의 준말쯤 되겠다. 나는 오늘 오랜만에 한강으로 자전거를 타러 나가 가을이 왔다는 걸 알았다. 물론 출발하며 느꼈던 쌀쌀함이 생경했지만 그렇다고 '가을이구나' 생각하진 않았다. '아 가을이구나' 내가 문득 생각한 것은 성산대교까지 마중 나온 코스모스들을 보고서다.

약 한 달 전쯤 "한 여름의 코스모스를 본 적이 있느냐"고 사람들에게 묻고 다녔던 때가 있었다. 누가 내게 묻는다면 '있다'라고 답하겠다 생각하며. 이유는 모르겠지만 7월이든 8월이든 한강철교 근처 한강공원의 산책로에는 한결같이 코스모스가 피어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듯 피어있는 모습에 서울에 올라와 자전거를 탄 지 2년 만인 한 달 전에야 무심코 그 사실을  알게 됐다. 가을이 온 걸 알게 된 건 그 여름의 코스모스가 어느덧 성산대교까지 마중나와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다니 '나를 마중 나온 여름의 코스모스는 나를 맞고, 여름을 배웅하겠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가을은 굳이 코스모스를 느끼지 않아도 '아 가을이구나' 알게 될 만큼 쌀쌀해지겠지.

어제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한 페스티벌을 찾았다. 공연도 하고, 강연도 하고, 관객들은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그냥 들으면 되는 '힐링' 글자가 붙은 그런 페스티벌이었다. 그곳에 연사로 나온 시인 고은 선생은 한 시간 가까이 강연을 하셨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다만 기억 나는 내용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9월 10월의 하늘을 보고 미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럴 수 있느냐"는 취지의 말이었다(워딩은 정확하지 않지만 나는 분명 그렇게 느꼈다). 높아진 하늘, 청량한 바람, 그리고 코스모스. 이제 가을이고, 우리는 본인이 자각하든 자각하지 않든, 자연에 미칠 것이고 미쳐야 할 것이다. '가을이 왔다는 걸 어떻게 아세요?' 누군가 물으면 "코스모스가 마중나왔지 않느냐" 반문하길. 그러니 이제 하늘을 보고 미치기만 하면 된다고. 그렇게 멋진 가을을 맞으면 그뿐이라고.


2015. 9. 20. 오랜만에 한강을 다녀온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