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갓을 썼을까. 필요는 창조의 어머니다. 따가운 햇살과 비를 피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을 터다. 용도가 바뀐다. 예(禮)를 숭상한 조선 사대부들. 민머리로 문밖을 나서면 속옷 바람으로 나다니는 것처럼 느낀 걸까. 갓은 예의 상징물로 변했다. 역사성이 독특하다. 사대부들은 왜 갓을 써야 하는지 의심이나 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아낙은 치마저고리, 사내는 바지저고리를 입는 것을 당연시한 것처럼.
의심한 사람이 있었다. 북경에 간 박지원. 그곳에 갓 쓴 사람은 조선 사행단과 불교 승려뿐이었다. 등나무 종려나무 껍질로 만든 갓을 쓴 라마교 승려들. 그들이 입은 도포까지 비슷했다. 이런 생각을 한다. “불교를 숭상한 신라 때 여염집에서 중국 승려 복장을 본받은 것은 아닐까. 그 복식이 천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은 것인가. 겨울에도 갓을 쓰고 눈 속에도 부채를 놓지 않으니 웃음거리가 아닐까.” 갓마저 예사롭게 보지 않는 북학파 학자의 비판정신이 번득인다.
박지원만 그랬을까. 북경에서 앞선 청의 문물을 본 실학파의 거두 홍대용, 박제가도 똑같았다. 그들은 필담으로, 짧은 중국말로 청의 학자를 잡고 묻고 물었다. 견문은 생각의 폭을 넓히고, 생각은 현실을 바꾼다. 조선 실학정신은 견문으로부터 시작했다.
돈을 지원받아 해외 어학연수를 떠난 영어 선생님들. 나이 들어 머리가 녹슬었기 때문일까. 6개월 뒤 돌아와 토익시험을 보니 600점에 미치지 못한 사람이 수두룩했다. 너무한 것 아닌가. 하기야 세금으로 해외 견학에 나선 의원들은 짧은 보고서를 베껴 써내는 판이 아니던가.
앙엽지성(?葉之誠). 갓조차 의문을 품고 바라보지 않았던가. 보고 들은 것을 감나무 잎에 적어 항아리에 담는 정성으로 견문을 넓히는데 어찌 교권이 추락하고, 어찌 정치인이 손가락질을 당할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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