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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의 정원의 속삭임]함께 살아가는 우리

바람아님 2015. 9. 20. 08:57


동아일보 2015-09-17 

가을의 꽃은 유난히 하얗거나 보랏빛이 진하다. 나비의 눈에 유난히 잘 보이는 색상이 보라색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경아 씨 제공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한 달 전쯤,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그 새끼들이 제법 자라 마당을 차지하고 꽃밭을 뛰어다닌다. 그러다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나비를 처음 봤는지, 팔랑거리는 나비를 잡겠다고 안간힘을 쓴다. 청명한 날이 많아진 속초, 내가 살고 있는 집 마당의 9월이다. 나비가 우리 집 마당으로 날아오는 건 꽃이 아직 피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은 이제 새롭게 꽃을 피우는 식물도 많다. 꺽다리 보라 꽃의 버베나와 쑥부쟁이, 벌개미취가 이제 한창이다. 거기에 아직 꽃을 피우지 않은 국화와 꽃망울이 부풀어 오른 헬리안투스는 일주일 정도면 만개를 하지 않을까.

분명 이 정원의 풍경은 8월과는 사뭇 다르다. 9월로 접어들면서 정원에 비추는 햇살은 우선 색이 다르다. 명암이 짙어져 햇살이 정원에 내려앉으면 노랑과 초록의 느낌이 더 깊어진다. 누구나 화려한 봄과 여름의 정원을 좋아하지만 가을의 정원은 고상하면서도 세련된 품격이 가득하다.

과학자들은 식물들이 꽃을 피우는 시기가 왜 다를까, 대부분 식물이 봄에 꽃을 피우는데 왜 어떤 식물은 낙엽이 지려는 가을에 꽃을 피우고, 식물들은 꽃을 피울 때가 온 것을 어떻게 알게 될까를 궁금해했다.

식물들이 꽃을 피울 시기, 낙엽을 떨어뜨릴 시기를 감지하는 것은 ‘낮의 길이’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동안은 급격한 기온 차 때문이 아닐까라는 추측도 있었지만 광합성 작용을 해야 하는 식물들이기 때문에 해가 비추는 시간을 감지하는 기능이 프로그램돼 있어 빛에 민감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렇다면 일부 식물은 곧 겨울이 다가올 것임을 알면서도 봄이 아니라 왜 가을에 꽃을 피우는 것일까? 이 해답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혼자가 아니라 다른 생명체와의 어우러짐에 의해 생존하고 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봄에는 유난히 많은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그만큼 생존 경쟁이 치열해진다. 수분을 할 곤충을 부르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서 아예 이 경쟁에서 벗어나 일부 식물은 꽃을 피우는 시기를 늦추기도 한다.

곤충들은 서서히 월동에 들어갈 채비를 하지만 나비들은 이 즈음 본격적인 짝짓기를 시작한다. 이때를 맞춰 기다렸다는 듯이 가을 식물들도 꽃을 피운다. 나비는 가을에 피어나는 꽃이 있어야 영양분을 비축해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하며 꽃들은 나비가 있어야 수분을 하고 씨앗을 맺어 다음 해를 기약한다. 생명체들의 협업 관계는 이것만이 아니다. 늦여름 꽃을 피우는 인동초는 유난히 밤이 되면 더욱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그러면 이 향기를 맡고 나방이 찾아와 준다. 낮에 피는 꽃이 나비나 벌을 불러들인다면 인동초는 야행성인 나방을 불러들이는 셈이다. 밤에 먹을거리를 구해야 하는 나방은 밤에 피는 꽃이 있어 생존이 가능하고 식물도 마찬가지다.

정원의 생명들은 늘 변화한다. 봄에 맹렬하게 번지던 잡초인 민들레, 별꽃, 꽃다지는 여름이 되면 한풀 꺾이고 강아지풀이 정원을 점령한다. 가을에 접어들면 방동사니의 세력이 거세진다. 찾아오는 곤충도 계절에 따라 다르다. 봄에는 벌과 파리, 무당벌레가 많이 날아들지만 늦여름이 되면 나비와 잠자리가 부쩍 많아진다. 물론 이런 변화는 식물의 변화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어느 것 하나 저 혼자 잘났다고 독불장군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삶을 보여준다. 그래서 가끔 우리는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하게도 된다. 우리 역시 이 지구에서 다른 생명체의 삶에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며 그렇게 서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도시라고 가을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을 베란다는 국화로 그 풍성함이 어느 계절보다 아름답게 연출된다. 들국화는 어렵지만 재배종 국화는 기특하게도 실내 환경에서도 잘 자라준다. 다만 햇볕을 좋아하니 창가에 화분째로 두고 가을을 함께 나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최근 영국을 비롯한 유럽은 이 국화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가을을 이렇게 풍성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꽃이 있는 줄 몰랐다며 열광하고 있다. 그 열광 속에서는 새로운 재배종을 개발하고, 어떻게 하면 오래도록 국화를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도 포함돼 있다. 국화의 자생지이기도 한 우리나라에서 식상하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사이에 그들은 전에 그랬듯이 외래종을 자기 것인 양 바꿔놓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전에 우리가 먼저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맘이 점점 조급하게 다가온다.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