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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도 혼자 사는 기분.. 늦깎이 결혼은 원래 이런 건가요?

바람아님 2015. 9. 18. 10:40
조선일보 2015-9-17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혼 남녀의 수는 현격히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별별다방 메일함에는 연분을 찾지 못한 남녀와 자식의 혼인을 고대하는 부모의 사연이 늘 차고 넘칩니다. 눈이 높은 딸 때문에, 스펙에 안 되는 아들 때문에, 결혼이 도무지 마음에 와 닿지를 않는 본인 때문에 고민이라는 사연들….

눈은 낮추고 마음은 열라는 뻔한 조언 말고,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저는 오늘의 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늦은 결혼일수록, 성숙한 중년의 결혼일수록 더욱 진중하게 따져봐야 하는 상대방의 조건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홍 여사 드림

삼년 전까지만 해도 제 인생 최대의 고민은 짝을 찾는 문제였습니다. 눈이 높았던 것인지, 제 성격이 까다로운 것인지 바로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을 찾지 못한 채로 여자 나이 마흔 살을 넘겼었으니까요.


그러다 거짓말처럼 저는 마흔한 살에 한 남자를 만났고, 마침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네 살 연상에 초혼이었던 사람. 그 두 가지만 해도 다행스러운 조건이었는데, 인상도 나쁘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사람이더군요. 대번에 내 짝이라는 확신이 섰던 것은 아니지만, 딱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없었기에 저는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은 무슨 이유로 이렇게 결혼이 늦어졌을까? 딱히 결격사유도 없고, 눈이 높거나 따지는 게 많은 것 같지도 않은데…. 이제야 연분을 만난 거라고 믿고도 싶었지만, 그러기엔 저를 대하는 태도가 참 심드렁했습니다. 나이 이만큼 먹어서 하는 결혼에 별 기대가 없는 것 같아 보였고, 인생관 자체가 조용히 쿨하게 한세상 살자는 거라더군요. 어쩌면 그런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일이 성사가 안 되었던 모양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저는 늦은 결혼을 감행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3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시점에 드는 생각은 결혼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회의감입니다. 저희 연령대의 다른 부부들은 지금 십대의 자녀를 키우며 아웅다웅 살아가고 있겠지요. 하지만 저희에게는 아이가 없습니다. 결혼할 때 이미 2세는 갖지 않기로 얘기가 되었습니다. 여자인 저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남자 쪽에서 자신 없다고 하더군요. 이 나이에 건강한 아이를 무탈하게 낳을지도 의문이고, 또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 남은 생을 애태우며 살고 싶지 않다고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저는 그 뜻을 따르기로 했던 것입니다. 주위에서도 이제는 둘이 함께 여유로운 여생(?)을 즐기라고 하더군요. 여행도 하고, 취미 생활도 같이하면서요.


그러나 현재 저희 생활을 보면 저희는 각자의 삶을 각자의 방에서 살고 있는 느낌입니다. 남편은 여행도 즐기지 않고, 취미 생활도 모릅니다. 주로 TV 보거나 책을 읽거나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지요. 그런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해서 제가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남편은 제 생활에도 별 관심이 없기에 대화도 길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남편은 처갓집에 대해서도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은 눈치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빠져들게 됩니다. 육아의 고된 과정을 통해서라도 의미 있는 시간을 쌓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운명을 같이하는 공동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2세 문제 말고도 남편과 저 사이의 거리감은 또 있습니다. 남편은 돈 문제에 있어서도 저와는 다른 생각입니다. 각자의 수입을 각자가 관리하길 원합니다. 일정한 생활비를 내놓는 것 이외에는 서로 터치하지 말자고요. 저는 아직도 남편의 정확한 수입이나 재산 상황을 잘 모릅니다. 저 역시 안정된 소득이 있기는 하지만, 과연 이게 부부 맞나 싶어지네요.


요즘 저는 자꾸 주위의 중년 부부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다들 자식 문제 때문에, 돈 문제 때문에, 시집이나 처갓집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런 현실적인 끈이 하나도 없이 형식만 근사하게 갖추고 사는 게 무슨 부부일까요? 서로 다툴 일은 없는지 모르지만, 둘이 한배를 탔다는 느낌이 안 듭니다. 아직 신혼인데, '무늬만 부부'라는 말이 아프게 느껴지니….

가끔은 남편한테 묻고 싶어집니다. 도대체 결혼이 무슨 의미라고 생각하기에 뒤늦은 나이에 모험을 한 거냐고요. 그러나 그런 질문을 마음 편히 꺼내기도 힘들 만큼 둘 사이의 대화가 메말라 있습니다.


아마도 저는 주제넘게 눈이 높아 혼자 있던 노처녀였을 테지만, 남편은 남다른 결혼관 때문에 혼기를 놓쳤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일부러 만혼을 선택했던 게 아닌가도 싶어요. 서로 구질구질하게 얽히지 말고 각자의 취향과 개성을 존중하는 동거 생활을 위해서는 이미 성격이 완성되고 인생에 기대하는 바가 별로 없는 성인을 만나야 했을 테니까요.


문제는 남편의 생각이 제 성격이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남편과의 안정된 동거 생활은 제가 생각한 행복한 결혼과 거리가 멉니다. 그러다가도 한 번씩 드는 생각은 스스로에 대한 질책입니다. 이것저것 따지다가 적령기를 놓치고 마흔 살 넘어 결혼해놓고 평범한 결혼의 행복을 꿈꾸는 자체가 욕심이라고요.


그러나 요즘 저처럼 늦은 결혼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잖아요. 그런 분들은 다들 저처럼 어딘가 평범치 않은 결혼 생활을 꾸려가고 계신가요? 제 남편처럼 '쿨한 결혼'에 만족하고 살아가는 분들도 많으신가요? 특히 여성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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