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오늘의 조선왕조실록] 귀화한 여진족의 문란한 풍습을 금지하다

바람아님 2015. 10. 19. 00:36
노컷뉴스 2015-10-18

조선왕조실록, 오늘은 조선에 귀화한 여진족들의 문란한 풍습을 바로 잡으려했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조선 초기에 4군 6진을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북진 정책이 추진되면서 인접한 곳에 거주하던 여진족들의 상당수가 조선으로 귀화했습니다.


조선은 이들에게 변발을 하지 말고 조선의 옷을 입으며, 예의를 잘 배우라고 권고했습니다. 이를 따를 경우 결혼도 시켜주고, 세금과 각종 부역도 경감하는 등의 혜택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쉽게 버리지 못한 풍습이 있었는데, 죽은 형의 아내를 첩으로 삼는 관습은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1429년(세종 11년)에 사헌부는 이같은 문란한 풍습을 처벌해야 한다고 건의했는데, 세종은 벌은 주지말고 해당 소재지의 관원으로 하여금 엄중히 금지하게 하라고 명했습니다.


■ 세종 11년 (1429) : 귀화한 야인의 문란한 풍습을 바로 잡으라 명하다
⇒ 귀화한 야인들이 자신들의 풍습대로 죽은 형의 아내를 첩으로 삼는 등 조선과 다른 문화 행태를 보이자 이를 금지토록 했다

■ 세종 17년 (1435) : 어린아이를 버린 자를 고발하면 면포 12필을 상 주게 하다
⇒ 세종은 어린 아이를 고의로 버리는 사람을 고발하면 상을 주도록 하는 등 어린 아이들의 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 정조 1년 (1777) : 인정전 뜰에 품계석을 처음으로 세우다
⇒ 조회 때 무질서 하게 서 있는 것을 막기 위해 인정전 뜰에 품계석을 세워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설 수 있도록 했다. 이 품계석은 지금도 경복궁에서 볼 수 있다


■ 정조 21년 (1797) : 동래 용당포 앞바다에 표류해 온 서양배에 대해 논의
⇒ 동래 용당포에 코가 높고 눈이 파란 서양인들이 탄 배가 표류해 왔는데 순풍이 불면 떠나도록 했다 실린 화물로 추정해 보면 일본과 교역을 하던 서양배로 추정 된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이사)

[CBS노컷뉴스 도성해 기자] holysea6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