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책·BOOK

생명체와 기계, 뒤엉킨 시대가 왔다

바람아님 2015. 12. 14. 10:32

(출처-조선일보 2015.12.12 김성현 기자)

3000여 종 사는 인공생태계… 美사막에 '유리온실' 만들어
과학 잡지 편집장인 著者 우연히 실험장 체험
"태어난 것과 만들어진 것들 이분적으로 나눌 수 없어"

'통제 불능'
통제 불능 : 인간과 기계의 미래 생태계
케빈 켈리/이충호,임지원/ 김영사/ 2015/ 931 p
331.5412-ㅋ434ㅌ/ [정독]인사자실(2동2층)

1988년 미국 애리조나주의 사막에서 외부와 격리된 인공 생태계를 만드는 실험이 벌어졌다. 
철골과 유리, 콘크리트로 만든 1만2500㎡(약 3700평) 규모의 거대한 유리 온실 구조물에는 
실제 지구처럼 열대 우림과 사막, 습지와 거주지 등 다양한 지역을 조성했다. 
아마존 유역에서 가져온 식물 300종을 비롯해 3000여 종의 생물이 거주하는 대형 생태 실험장에는 
8명의 인간도 들어가서 살기로 했다. 인류가 사는 지구에 이은 '두 번째 생태계'라는 의미에서 
이 실험장에는 '바이오스피어2(Biosphere2)'라는 이름을 붙였다. 8인용 '노아의 방주'와 다름없었다.

공사가 완공된 직후인 1991년 봄, 과학 잡지 '와이어드(Wired)'의 초대 편집장인 저자 케빈 켈리가 
운영자들의 관리 실수 때문에 안내인 없이 혼자 이곳에 들어갔다. 
공사하던 인부들은 작업을 마친 뒤 귀가했고, 운영자들은 언덕 위의 조명을 이미 끈 상태였다. 
'인공적으로 조성한 자연'이라는 형용 모순에 대해 켈리는 "기괴할 정도로 조용했다. 
마치 거대한 대성당 내부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바깥 세상인 지구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갈색 사막이었지만, 반대로 바이오스피어2의 내부는 초록이 무성한 생명의 
세계였다. 높이 자란 풀과 욕조에 떠다니는 해초, 물 위로 첨벙 튀어 오르는 물고기를 보면서 그는 "고작 몇 시간을 
그 안에서 돌아다니면서 몇 년치의 생각거리를 가지고 나왔다"고 말했다.
미국 애리조나에 지구 생태계와 흡사한 시스템을 갖추고 문을 연‘바이오스피어2’.
미국 애리조나에 지구 생태계와 흡사한 시스템을 갖추고 문을 연‘바이오스피어2’
지금은 애리조나대가 연구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애리조나대 제공
수년치의 고민거리를 잔뜩 싸들고 나왔던 저자가 1994년 발표한 과학 서적이 '통제 불능(Out of Control)'이다. 
참고 문헌과 찾아보기를 빼고 한글판 본문만 890쪽에 육박하는 이 책의 화두(話頭)를 단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신조어인 '비비시스템(vivisystem)'이 될 것이다. 
살아 있다는 의미의 '비비(vivi)'와 체계를 뜻하는 '시스템'의 합성어인 이 말은 "태어난 것들(생명)과 만들어진 것들(인공)의 
결합"을 뜻한다.

생태계 같은 생명 공동체와 로봇이나 인공 두뇌처럼 인간이 만든 기계가 더 이상 '칼로 두부 자르듯' 둘로 나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어우러지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생물학과 컴퓨터·기계 공학이 뒤엉키는 세상이라는 저자의 주제 의식은 
물질과 정신을 명확하게 구분했던 데카르트의 '이원론(二元論)'에 대한 훌륭한 지적(知的) 도전이기도 하다.

원서 출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카오스와 퍼지(fuzzy)  이론 등 이 책의 문제의식들은 어느새 퀴즈 프로그램에서도 
단골 출제되는 상식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이 책이 여전히 의미 있다면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을 우려하는 
디스토피아(dystopia)의 시대에도 꿋꿋하게 낙관론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어쩌면 '학문적 주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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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온실에서 보낸 2년 20분

(출처-조선일보 2008.04.04 이영완 기자)

인간 실험 2년 20분 : 바이오스피어 2스피어 2

제인 포인터 지음/ 박범수/ 알마/2008/ 504p

472.5-ㅍ49ㅇ/ [정독]인사자실(2동2층)/  [강서]2층 자료실서고(직원문의)

1991년 9월 26일, 8명의 남녀가 미국 애리조나 투손 사막에 세워진 '바이오스피어(Biosphere)2'라는 
거대한 유리 온실 속에 스스로 갇혔다. 수십억 년에 걸쳐 진화해온 지구의 생물권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만한 공간에 재현해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인류가 자급자족하며 살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 책은 이곳에서 2년하고도 20분을 견뎌낸 영국인 여성 제인 포인터의 생존 기록이다. 
바이오스피어2란 이름은 '바이오스피어1'인 지구와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바이오스피어2에는 열대우림·사바나·사막·습지·대양을 모방한 자연 생태계와, 인간이 사는 거주·농업구역이 설치됐다. 
전 세계에서 모아온 3800종의 동식물이 살고 있는 명실상부한 제2의 생물권이었다. 8명의 대원들은 처음 이곳을 
'에덴 동산'이라 불렀다. 아담과 이브처럼 자연과 혼연일체가 된 생활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꿈은 곧바로 깨졌다. 얼마 되지 않아 산소와 이산화탄소 균형이 깨졌으며, 기대했던 것만큼 농사가 되지 않아 
늘 허기에 시달리게 됐다. 힘든 생활 속에서 대원들은 둘로 갈라져 원수가 됐다.

그렇다면 바이오스피어2 프로젝트는 실패였을까. 
저자는 "첫 시도에서 우리가 얼마나 목표에 근접했는지를 보라"고 말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과학자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났다. 
인간이 만든 생물권이 잘만 하면 가능하다는 희망도 안겨줬다. 그만하면 2년 20분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책을 보면 '4개월 피자' 요리법이 나온다. 밀을 심고 양을 키운다. 
밀을 빻아 밀가루를 만들고 젖을 짜 치즈를 만든다. 여기까지 꼬박 4개월이 걸린다. 
오늘 점심 식사는 도대체 몇 개월짜리일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