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15-12-31
나에 대한 연민과 혐오에 시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 무렵 마음공부나 심리학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었다. 책의 결론들은 대체로 ‘우선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러면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도대체 나를 사랑한다는 건 무엇일까? 책에서 하라는 대로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말한 적도 있다. ‘나는 잘났다. 나는 예쁘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고. 그렇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잘난 건 아니잖아. 그렇게 예쁜 건 아니잖아. 그렇게 좋은 사람도 아니잖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저기서 이 구절이 눈에 띌 때마다 행복은 모두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니까 반드시 타자성이 개입하는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행복은 타인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면서 모두들 갖고 싶어 하는 것이나 부러움을 살만한 것을 가져야 어느 정도 가능하다. 하다못해 남들이 가진 만큼은 가져야 한다. 내가 잘났고 예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납득하려면 아무리 자신감이 있다 해도 타인의 인정과 지지라는 기반이 필요하다. 나를 사랑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행복과는 달리 불행에는 오히려 주체적일 수 있는 면이 있다. 어떤 불행은 선택하지 않을 여지가 있다는 것. 사람들이 나에게 ‘소설가세요?’라고 물으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네, 삼류 무명소설가예요’라고 대답할 때가 있다. 그러고 돌아서면 후회막심이다. 그건 겸손도 진실도 아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나 자신을 규정하고 차별하는 것일 뿐.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세상의 잣대나 시각을 들이밀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나에게 있고 그것을 끝끝내 지켜야 한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나르시시즘이나 자기미화로 도피하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무명소설가라 해도 삼류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부희령(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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