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한·일 간 위안부 관련 협상 타결 직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일본 총리의 사죄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일본 정부 책임을 인정한 점에서 과거 어느 사죄 표현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일본이 잃은 건 (기금으로 내기로 한) 10억엔뿐”이라는 발언 등이 나오는 걸 보면 진심 어린 반성이 아니다. 외교적 합의에 따른 사죄의 한계다.
진정성이 없으면 사과를 하지 않느니만 못한 사례가 많다.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 때 나온 사과문은 여론을 진정시키기는커녕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운전기사 폭행 논란을 일으킨 몽고식품 김만식 전 명예회장의 대국민 사과 장면은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가 사과문을 읽으면서 수차례, 끝내고서도 연방 ‘대단히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으나 왠지 공허했다.
같은 달 2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한 공연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마술사 최현우씨의 공연이 갑자기 취소됐다. 조명이 고장 난 탓이었다. 공연 시각을 넘겨서도 입장을 못 하고 밖에 기다리던 관객 사이에서 항의와 짜증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때 최현우씨가 관객 앞에 나타났다. 그는 공연 취소와 환불 대책을 결정하느라 늦었다면서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는 ‘100% 환불과 다음 공연 초대’ 또는 ‘110% 환불’을 소개하고 자신과 사진을 함께 찍을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그가 관객과 일일이 사진을 찍는 사이 직원들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서있느라 많이 힘들었지”라고 거듭 사과했다.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항의와 짜증이 감동으로 바뀌고 관객은 웃으며 귀가했다. 최현우가 관객 마음을 움직인 건 마술이 아니었다. 진심 어린 사과의 마음이었다.
박희준 논설위원
'時事論壇 > 橫設竪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트북을 열며] 지나치게 폭로적인 (0) | 2016.01.06 |
---|---|
[기자의 시각] '위기 회고록' 더 써라 (0) | 2016.01.05 |
[김진국의 시대공감] 분노의 해, 희망의 해 (0) | 2016.01.03 |
[분수대]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0) | 2016.01.02 |
[만물상] 丙申年의 행복 (0) | 2016.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