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기자의 시각] '위기 회고록' 더 써라

바람아님 2016. 1. 5. 10:34

(출처-조선일보 2016.01.05 방현철 경제부 기자)


방현철 경제부 기자 사진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미국 예금보험공사(예보) 사장을 지낸 실라 베어의 회고록 

'Bull by the Horns(황소의 뿔을 잡다)'를 지난 연말 미국에 주문해 사고야 말았다. 

2012년 나온 이 책을 뒤늦게 펴든 것은 작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가이트너 전 재무장관의 

'스트레스 테스트'와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의 '행동하는 용기'를 읽다가 실라 베어가 

누군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실라는 집요할 정도로 예금보험기금을 지키려고 했다.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돈을 광범위한 금융 시스템보다도 우선시하는 것 같았다."(버냉키) 

"실라는 예보와 예보기금의 강력한 옹호자였고, 정치와 언론에 대해서도 우리보다 정통했다."(가이트너)

두 사람은 베어를 미국 경제를 위기의 수렁에서 건져내는 데 힘을 쏟기보다는 예보라는 공공기관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고집부리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베어가 육성(肉聲)으로 뭐라 하는지 듣고 싶었다.

베어는 가이트너를 시티그룹 등 대형 은행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사람으로 그렸다. 

위기를 불러온 은행들을 벌하기보다는 무조건 돈을 대주려 했다는 것이다. 대형 은행에 대한 적개심도 숨기지 않았다. 

미 재무부와 연준을 은행 이익의 수호자로 묘사했다.

그는 서민의 예금을 조금씩 떼어 만든 예보기금을 월가 은행 보호에 퍼줘서는 안 된다고 했다. 

버냉키에 대해선 그나마 '신사'라고 부르며, '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예보의 입장을 귀담아들으려고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주간지 타임은 그런 베어를 2008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중 한 명으로 선정하고 '서민의 최고보호책임자'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세 사람의 육성이 담긴 회고록을 읽으면서 '방화범에게 죄부터 물어야 한다'는 베어와 '큰불로 집이 무너지기 전에 

일단 불부터 끄자'는 가이트너와 버냉키의 주장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위기 극복의 영웅이라는 가이트너를 비난하는 베어의 시각도 신선했다. 

버냉키와 가이트너의 회고록에선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을 전후해 미국이 전체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었고, 베어의 책에선 중소은행으로 위기가 번지는 것을 어떻게 막았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있었던 일들이 대부분 구전(口傳)으로 전해질 뿐이다. 

회고록으론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현장에서 본 경제 위기 대응 실록' 정도밖에 없다. 

그나마 540여  쪽 중에서 2008년 위기를 다룬 부분은 30쪽 정도로 짧아 아쉽다. 

다른 사람들은 회고록을 쓰지 않아 미국처럼 가이트너, 버냉키, 베어 등 다양한 관점에서 위기를 따져볼 수도 없다. 

이래서는 위기 대응 노하우가 축적될 리 없다. 

전광우·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 등 당시 소방수 역할을 했던 분들의 육성 회고록을 기대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