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살며 사랑하며-안현미] 운수 좋은 날

바람아님 2016. 2. 22. 00:07
국민일보 2016.02.21. 17:34

중국 대륙을 호령하는 남자의 아내 펑리위안의 명언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친구가 보내준 글을 읽는다.
‘똑똑한 남자는 관리할 필요가 없고, 멍청한 남자는 관리해도 소용이 없고,
당신을 사랑하는 남자는 관리하지 않아도 되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는 관리할 자격이 없습니다.
때문에 당신은 열심히 여자로 살면 되는 겁니다.’
틀린 소리는 아닌데 친구의 기대만큼 호들갑을 떨며 맞장구를 쳐줄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음이 문제인지 몸이 문제인지 까닭을 모르는 우울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중이다.

어설프게 자가진단을 하자면 ‘번아웃’ 상태가 아닐까 싶다.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은 애진즉 사라졌고 인간관계에 대한 관심과 노력도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이 공허한 것만 같고 습관적으로 출근하지만 출근하자마자 퇴근시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때운다. 총체적으로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문제의식조차 무기력을 이겨내지는 못한다. 열심히 여자로 살지는 못했지만 인간으로는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어쩌다 나는 이렇게 됐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에 친구가 알려준 용하다는 곳을 찾아갔다. 친구의 말로는 전화나 인터넷 예약은 받지 않고 직접 찾아온 손님만 받는데 늦게 가면 먼저 온 손님이 많아 오래 기다려야 하거나 허탕을 칠 수도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아침 일찍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오래되고 허름한 건물 이층에 있는 그곳을 찾아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허탕쳤다. 아침 아홉시에 문을 여는데 20분밖에 안 지난 그 시각에도 그곳 응접실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무단결근을 감행하면서까지 작심하고 찾아갔는데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인터넷에서 공짜로 본 오늘의 운세를 떠올렸다. ‘순정은 밟히고 풀리는 건 하나 없으나 작은 재물은 지킬 운수.’ 손에 쥐고 있던 오만원을 다시 지갑에 넣고 집으로 돌아온 운수 좋은 날이었다.


안현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