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 다리 위를 걸을 때면 늘 긴장한다. 사흘 추우면 나흘 따뜻하다는 법칙이 대체로 지켜지는 편인 우리나라 겨울 날씨에도, 다리 위는 내내 꽁꽁 얼어붙은 빙판인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 아, 다리 아래는 빈 공간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다리가 가엾어졌다.
삶의 표면에도 얼음이 뒤덮일 때가 있다. 이제 막 번져가는 살얼음일 때도 있고 쩡쩡 갈라지는 소리가 울리는 두껍고 깊은 얼음인 경우도 있다. 허공에 걸쳐 있는 다리처럼 중심과 토대가 텅 비는 것이다. 비어 있는 공간을 들고 나는 바람이 심장에 차가운 얼음 조각들을 박아 넣기 시작한다.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질문들이 오락가락한다. 나는 왜 태어난 것일까. 나는 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런 삶에도 의미가 있는 것일까. 도대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은 삶의 중심에서 온기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징후이기도 하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에 대해 많은 시간 고민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대답은 매우 단순하다. 나는 그냥 어머니 아버지에게 생명을 받아서 태어났다. 거기에 이유는 없다. 문제는 그런 질문을 수없이 하게 되는 상황에 있다. 나의 존재가 기본적으로 부모에게 기쁨이고 사랑이었다면, 훨씬 더 순조롭게 다른 이들에게 기쁨이고 사랑인 존재가 된다. 사람은 기억하는 존재다. 태어나서 맨 처음의 기억이 환영받고 사랑받은 기억이라면, 그런 질문을 쉽사리 하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가질 이유가 없을 테니.
마찬가지로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느낌은 내 삶과 죽음 역시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느낌은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좋다는 허락이기도 하다. 사람들 대부분은 끊임없이 그것을 확인하려 하고 증명하려 한다. 그렇다면 항상 충만한 사람은 없는 것인가. 모두들 이따금 허공에 걸쳐 있는 다리가 되는 것인가. 빈 공간을 향해 질문할 수 있는 건 오직 빈 공간일 뿐인가. 질문이 없으면 온기도 없는 것인가.
부희령(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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