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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신 삼종지도, 남자가 따라야 할 세 가지 도리

바람아님 2016. 3. 16. 23:55
중앙일보 2016.03.16. 00:13

新 삼종지도

남자가 따라야 할 세 가지 도리는
"어려서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결혼해서는 아내에게 순종하고
늙어서는 딸의 말을 따라야 한다"


‘삼종지도’(三從之道)는 원래 여자가 따라야 할 세 가지 도리를 말한다. 어려서 아버지 말을 잘 듣고, 시집가서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중국 유교 경전인 ‘예기’(禮記)에 나온 말로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기본적 윤리로 존중됐던 ‘삼강오륜’(三綱五倫)에도 등장한다. 2016년 대한민국엔 ‘신(新) 삼종지도’라는 말이 등장했다. 삼종지도 속 여성을 남성으로 바꾼 것이다.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또 다른 버전도 있다. 여자는 어려서는 아비의 뜻과 어미의 뜻을 함께 따르며, 시집가면 지아비를 가르쳐 평등한 가정을 만들고,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에 연연하지 말며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삼강행실도 열녀편 ‘여종지례(女宗知禮)’.
삼강행실도 열녀편 ‘여종지례(女宗知禮)’.
모델 최정윤(39)씨는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가정에서도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결혼 10년차 주부다. 김경록 기자
모델 최정윤(39)씨는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가정에서도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결혼 10년차 주부다. 김경록 기자

가정 내 달라진 남녀 위상
아들아 넌 이렇게 살아라 … ‘가모장’이 교육·경제·노후 이끈다

“남자는 조신하게 살림이나 해라.” “어디 아침부터 남자가 인상을 쓰느냐.” “여자가 하는 일에 토 달지 마라.” “남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패가망신한다.”


남성이 여성에게 하던 말을 여성이 남성에게 하고 있다. 개그우먼 김숙이 JTBC ‘님과 함께2-최고의 사랑’에서 가상 부부를 맺은 남편 개그맨 윤정수에게 쏟아 붓는 말이다. 또 다른 방송의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강주은은 마초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최민수를 아이처럼 다룬다. 이런 모습을 두고 전통적인 한국의 가부장(家父長) 사회가 가모장(家母長) 사회로 바뀌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견해가 나온다. 최근에는 조선시대 여성의 덕목이던 ‘삼종지도’(三從之道)를 현대 남성의 덕목으로 패러디한 ‘신(新) 삼종지도’라는 말이 유행한다. 30~60대 남녀 30명으로부터 이런 변화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엄마 정보력, 아빠는 따라갈 수 없어
자녀 교육에 대한 남성의 입지 줄어
“훈수 두느니 차라리 무관심이 나아”


여성의 역할이 가장 큰 분야가 자녀 교육이다. 올해 아들을 서울 명문대에 합격시킨 김모(49·여·대치동)씨가 좋은 예다. 교육열이 남다른 그는 아이 진학을 위해 입시설명회를 쫓아다닌 것은 물론, 대학별 입시 정보도 줄줄 꿰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참석한 입시설명회만 10번이 넘는다. 대입 수시 전형을 준비할 때는 유명하다는 컨설턴트를 찾아 조언을 들었고, 대입에 필요한 비교과 활동을 알아내 준비시켰다. 아이의 스펙이 어떤 학교, 학과에 유리할지 판단하고 전략을 짜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지원 대학과 학과 등을 남편과 상의는 했지만, 대부분 혼자 결정했고, 의견 충돌이 있을 때도 자기 뜻을 밀고 나갔다. 김씨는 “아이가 고3 때 대학선이수제(AP)나 종합경제이해력검증시험(tesat)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남편이 ‘학생들이 준비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고 반대했지만 ‘뭘 모르는 소리’라고 생각해 무시했다”며 “엄마 네트워킹을 통해 얻은 정보와 발품 팔아 쌓은 지식 덕분에 자녀 교육에서는 남편보다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뿐 아니다. 가정에서 자녀 교육을 도맡아 하는 건 대부분 여성이다. 이는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마찬가지다. 사실 엄마가 자녀 교육을 도맡아 하는 건 줄곧 이어져 온 일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자녀 교육에 대한 남편의 권한이 이전보다 더 줄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남편이 자녀 교육을 직접 담당하지 않아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중심에서 밀려났다. 오죽하면 대입에 성공하는 요소 중 하나가 ‘아빠의 무관심’일까. 고3 자녀를 둔 김은경(47·여·서초구 우면동)씨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남편이 최근 입시제도나 교육 트렌드도 모르면서 훈수 두는 게 탐탁지 않다”고 말했다. 본인 학생 때만 생각해 ‘학원 다닐 필요 없다’거나 ‘공부는 혼자 하는 거’라고 할 때마다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단다. 그는 “다른 건 몰라도 자녀 교육만큼은 남편이 여자가 하는 일에 끼어들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자들은 자녀 교육에 상대적으로 뒷전일 수밖에 없다. 이모(42·남·서초구 세곡동)씨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육아 때문에 함께 거주하는 장인이 아내와 함께 아이 교육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굳이 나설 필요도 없다. 그는 “초등학교 선택이나 전학 등 큰 사안에 대해서는 의견을 묻기도 하지만, 대부분 두 사람이 논의해 결정하기 때문에 얘기해봐야 크게 바뀌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맞벌이 가구 20년 새 13.2% 증가
여성이 재테크 도맡고 몫돈만 의논
“내 연봉이 더 높아 남편이 눈치 봐”


여성의 경제적 독립은 가정 내에서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원동력이 됐다. 1994년 30.7%에 불과했던 맞벌이 가구 비율은 2014년 43.9%로 13.2% 늘었다.

예전에는 남편의 수입으로 생계를 꾸리는 가정이 대부분이라 남편이 가정에서 권력을 잡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맞벌이 부부가 절반 가까이 되는 요즘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거나 여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모(36·여·송파구 잠실동)씨는 “어렸을 때는 아빠 외벌이라 엄마가 항상 아빠 눈치를 보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춰줬지만, 이제는 연하인 남편보다 내 연봉이 더 높고 육아까지 내가 담당하니 남편이 내 눈치를 보고 모든 걸 나한테 맞춰주는 게 당연한 것 같다”며 “가정 내 의사 결정권이나 주도권은 경제력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계 관리를 여성이 하는 경우도 늘었다. 예전에는 회사에 다니거나 사업하는 남편이 아내에게 일정한 금액을 갖다 주는 식이었지만, 이제는 남편이 월급을 통째로 아내에게 맡기고 용돈을 타 쓰거나 체크카드로 생활한다.

맞벌이하는 고모(32·여·경기도 광명시)씨도 그중 하나다. 남편은 월급 전액을 고씨의 통장으로 이체시키고 자신의 명의로 된 카드를 사용한다. 남편은 고씨가 어디에 돈을 쓰는지 알 수 없지만, 고씨는 자신의 통장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확인하는 게 가능하다. 그는 “이런 상황 자체가 가정 내 경제 주도권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이동했다는 증거 같다”며 “주택 구입이나 재테크처럼 목돈이 들어가는 일만 함께 논의해 결정한다”고 말했다.


 맞벌이가 아닐 때도 마찬가지다. 외벌이를 하는 송모(39·남·경기도 일산)씨는 10년 전 결혼하는 순간부터 월급 전부를 아내에게 맡기고 하루에 2만원씩 용돈을 타 쓴다. 어렸을 때 어머니의 재테크 수완이 아버지보다 좋았고, 적은 월급으로 재산을 불리는 모습을 보면서 ‘돈 관리는 여자가 하는 게 맞다’는 가치관을 갖게 됐다. 그는 “솔직히 여자가 남자보다 꼼꼼하고 섬세하기 때문에 돈 관리도 잘한다”며 “주변 친구 중에도 70~80%가 아내에게 가계를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각각 독립적으로 가계를 꾸리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맞벌이하더라도 남자나 여자에게 전액을 맡기는 게 아니라 공통의 통장을 만들어 일정한 금액을 생활비로 내는 식이다. 통계청의 2015년 가족실태조사도 이를 잘 보여준다. 가족 내 의사결정을 묻는 질문에 ‘부부가 함께한다’는 의견이 자녀 교육은 36.8%였지만, 주택 구입은 57.5%, 투자·재산관리는 43.6%였다. 남성이나 여성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게 아니라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가계를 꾸려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결혼 2년 차인 직장인 이모(33·여·송파 가락동)씨는 “맞벌이하면서 자신이 모든 돈을 관리하는 세 살 터울 언니와 달리 나는 서로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며 “처음에는 남편이 ‘귀찮다’며 모든 걸 내가 하길 원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도 경제력을 갖길 원했고, 혼자 관리하기 힘에 부칠 때가 많아 동의했다”고 말했다.


부모 부양, 남녀 구분 사라진 지 오래
남성 38.5% 처가살이 할 의향 있어
“출가외인, 이젠 여자가 아니라 남자”


부모 부양에서도 여성의 역할은 늘어났다. 딸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거다. ‘출가외인’(시집간 딸은 집 사람이 아니고 남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대학생 자녀를 둔 김혜라(52·여·양천구 목동)씨는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는 아들 키워봐야 장가가면 아무 소용없다는 의미로 ‘아들은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 ‘아들은 며느리의 남편’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며 “출가외인은 이제 여자가 아니라 남자에게 해당하는 사자성어가 됐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아들이 부모를 부양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남녀 구분 없이 능력이 되는 사람이 모시는 분위기가 강해졌고, 부모 세대도 굳이 자식들에게 의지하려는 생각이 옅어졌다. 서모(63·여·서초구 방배동)씨는 “손주를 돌보거나 돈을 모으는 것처럼 특별한 목적이 없는 이상 아들이나 딸 그 누구와도 함께 살고 싶지 않다”며 “능력이 되면 따로 살다가 더 나이 들면 요양원이나 실버타운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일하는 딸 대신에 손주를 보는 친정엄마가 늘면서 처가살이하는 젊은 부부도 많아졌다. 이모(42·남·강남구 세곡동)씨는 “육아 때문에 장인·장모와 살림을 합친지 올해로 6년째”라며 “장인이 자녀 교육에 앞장서고, 장모가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해 주시니 여러모로 편하다”고 말했다. ‘겉보리 서 말만 있으면 처가살이하랴’는 속담이 옛말이 된 거다.


 처가살이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2014년 취업포털 사람인에서 미혼 직장인 1362명을 대상으로 부모 부양에 대해 설문조사 한 결과 남성의 38.5%는 ‘처가살이도 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지만, 여성이 ‘시집살이를 하겠다’고 말한 비율은 19.1%로 절반 정도밖에 안 됐다. 고모(32·여·경기도 광명시)씨는 “외동딸이라서 결혼하기 전부터 엄마를 모시고 살 생각을 했고, 남편도 동의했다”며 “고부관계보다 장서관계가 수평적이기 때문에 남자들도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들보다 상대적으로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것도 부모가 딸에게 의지하게 만드는 요소다. 여성이 남성보다 관계 지향적이고 공감과 소통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1남 2녀 삼남매를 모두 출가시킨 권모(63·여·송파구 가락동)씨는 “어렸을 때는 ‘아들이 최고’라는 생각에 집안일도 딸들만 시킬 정도로 편애해서 키웠는데, 막상 다 키워놓고 보니 부모를 알뜰살뜰하게 챙기는 건 딸이더라”며 “아들은 장가간 후 어쩌다 한 번씩 일 있을 때만 연락을 하지만 두 딸과는 하루에도 몇 번씩 카톡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깝게 지낸다”고 말했다.


 남아선호사상이 옅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딸 둘을 낳으면 ‘금메달’이고, 아들 둘을 낳으면 ‘목메달’이라는 얘기는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3 외아들을 둔 김모(43·여·관악구 성현동)씨도 “언니에 이어 둘째 딸로 태어난 탓에 신생아일 때 아버지가 쳐다보지도 않았을 정도로 ‘남존여비’(男尊女卑)가 심했다”며 “요즘 딸과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는 언니를 볼 때마다 딸 한 명 더 안 낳은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김혜라씨는 “예전에는 결혼한 이후 친정에 드나드는 게 남편이나 시댁 식구 눈치가 보였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며 “오히려 남편이 부모님 챙길 때 아내 눈치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가모장, 고달픈 수퍼우먼
가정에선 역할 늘고, 사회에선 유리천장에 갇혀


가정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전문가들은 “가모장 사회로의 변화는 시대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고 입을 모은다.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고 산업이 한창 부흥할 때는 사회의 중심 가치가 ‘가정’보다는 ‘일’이었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가족’을 우선시하는 사람이 늘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남자는 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 살림만 하던 이분법적 구조도 깨졌다.


TV 속 김숙 보며 가부장 해체 카타르시스
OECD 여성 고용 차별 1위, 유리천장 1위
실제론 여성 우위 아냐…맘충 등 여혐도


 이런 움직임은 선진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미국의 여성 저널리스트 해나 로진은 책 『남성의 종말』에서 “남자들은 4만 년 동안 세상을 지배했고, 여자들은 40년 전부터 남자를 밀어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는 책에서 2009년을 기점으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력의 균형추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기울어진 여성 우위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지식과 서비스가 중심이 되는 후기 산업사회로의 전환을 들었다. 과거엔 몸집이나 체력이 약한 여자가 남자에게 주도권을 빼앗겼지만, 사회 지능과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한 현대에 접어들면서 육체적 힘의 우위가 주도권을 결정하지 않는 세상이 된 거다. 한국워킹맘연구소 이수연 소장은 “세대 간의 소통이 중요한 상황에서는 공감 능력이 뛰어난 여자들의 위상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고령화, 저출산 시대도 여성에게 힘을 실어줬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가 여성에게 긍정적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가정 내에서 성 역할의 경계가 무너진 게 마치 여성의 지위가 올라간 것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디어에서 과장해서 가모장을 다루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안상수 평등사회연구센터장은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하는 건 맞지만, 마치 우리 사회가 여성 우위 사회인 것처럼 비치는 건 위험하다”며 “아직 사회 곳곳에서 불평등하게 사는 여성들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가모장 사회로 접어들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거다.


 가모장 사회라는 말 자체에도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 가모장이라는 말을 가부장의 미러링 효과(상대의 말과 행동을 모방해 상대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방법)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박모(37·여·강남 역삼동)씨는 “가부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권위적’이라는 말과 이어지는 것처럼 ‘가모장’이라는 말도 ‘여성이 남성을 지배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며 “김숙이나 강주은의 행동을 보면서 여성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게 아직 우리 사회가 가부장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혐오심이 증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기를 펴지 못하고 지내는 일부 남성들이 여성 비하에 앞장서기 시작한 거다. 백모(33·여·송파구 신천동)씨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김치녀’ ‘된장녀’ ‘맘충’이라고 매도하는 저변에는 ‘여자는 조신하고 남자의 말에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며 “최근 이슈가 된 반(反) 여성혐오 사이트 ‘메갈리아’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도 이와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가모장 사회가 여성에게 과도한 역할을 부여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전에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아이만 키우면 됐지만 이제는 회사에 다니면서 자녀 교육도 해야 하고, 가정 경제도 이끌고, 부모도 부양하는 말 그대로 ‘수퍼우먼’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결혼 10년 차 구모(33·은평구 진관동)씨는 “시어머니는 ‘여자도 일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전업주부로 생활하면서 했던 역할까지 기대한다”며 “가모장 사회가 결코 여성에게 좋은 건 아니다”고 말했다. 김모(36·서초 잠원동)씨는 “회사 일이 많아서 집에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죄인이 된 기분이 들 때가 있다”며 “전업주부라 집안일만 신경 썼던 엄마가 부러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에서 남녀차별이 여전히 심한 것도 문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가장 심한 국가로 꼽힌다. OECD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2년 이래 계속 1위다. 유리천장(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회사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비판하는 말) 지수도 여전히 낮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2016년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25점을 받아 OECD 주요 29개국 중에 꼴찌를 차지했다. 유리천장 지수는 고등교육과 남녀의 임금 격차, 기업 임원과 여성 국회의원 비율 등을 종합해 산출하며 지수가 높을수록 사회에서 양성평등이 잘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집에서는 수퍼우먼이 돼야 하고,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벽을 깨야 하는 게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이 짊어져야 할 짐이다.


전민희·정현진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