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평화협정 병행 논의에 큰 불을 붙인 사람은 중국 외교부장 왕이다. 왕이는 2월 23일 워싱턴에서 존 케리 국무장관을 만나 북한 핵 문제를 평화협정과 병행 논의로 풀자고 제안했다.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케리는 북한이 비핵화 논의의 협상테이블에 나온다면 북한은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어 한반도의 미해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핵화 먼저”가 아니라 "비핵화 협상테이블로 나오면” 평화협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현실적 입장은 비핵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한국의 원칙적 입장과 충돌한다. 왕이는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논의를 거듭 띄우고 다닌다. 중국은 평화협정이라는 골포스트를 한반도 문제 해결의 종착역으로 세워놓은 것이다.
평화협정은 북한의 전매특허품이다. 북한은 한반도와 인도차이나 문제에 관한 1954년 4월 제네바 정치회의에서 평화협정을 처음으로 제안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1962년과 74년 미국에 주한미군 철수를 조건으로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했다. 85년과 91년에는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북·미 평화협정, 남북 불가침조약을 제안했다. 92년 1월에는 김용순 노동당 국제비서가 미국을 방문해 아널드 켄터 미 국무차관과의 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접을 테니 북미 외교관계를 수립하자고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김정일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그리고 같은 해 10월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에게 미군의 한반도 계속 주둔을 용인하겠다고 말해 김용순의 제안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