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시민의 정치, 예술을 키우다

바람아님 2016. 3. 18. 09:07

(출처-조선닷컴 2016.03.18  여미영·디자인 회사 3D 대표)


여미영·디자인 회사 3D 대표 사진베를린은 현재 예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도시로 꼽힌다. 
시민 손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7년 만에 황량했던 도시가 독보적 예술 도시가 되었다. 
통일 후 밀려든 호기심 많은 예술가와 이민자, 젊은이들은 벙커와 슬럼 등 동독의 은밀한 공간을 발굴했다. 
온 도시를 캔버스 삼아 단장하고, 다문화가 어울린 도시 경험을 촘촘히 채워 넣으면서 '나치 정부의 수도' 
'분단' 같은 암울한 이미지를 벗고 매력적으로 변신했다.

최근 베를린에서 만난 이곳의 건축가 그룹 리얼리티스 유나이티드의 에들러 형제는 뜻밖의 말을 던졌다. 
"우린 요즘 정치인이 된 것 같아."

얘기인즉, 이들은 사무실 창밖으로 슈프레 강을 볼 때마다 이 도시의 격에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고 한다. 
특히 베를린 여행의 중심인 미술관 지구 밑 운하는 오염된 채 방치돼 있었다. 이를 재생시킬 아이디어를 고심하던 끝에 
강 상류는 조경을 통해 물을 정화하고, 하류 쪽은 공공 수영장으로 활용하는 플루스바트(Flussbad·강변 수영장)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들은 이 프로젝트로 4년 전 친환경 개발을 지원하는 세계적 공모전 '홀심 어워드'에서 금상을 받았다.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며 베를린 시민의 뜨거운 지지를 받게 됐고 결국 시(市)가 연구비를 지원했다. 
정치인과 환경 운동가, 과학자들은 물론 자원봉사자까지 투입돼 연구가 본격화되었고 지난해 시범 삼아 수영 대회가 열렸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이 과정에서 에들러 형제는 프로젝트 때문에 수시로 정치인, 사회운동가를 만나 설득하고 시청에 가서 진척 상황을 보고했다. '정치인이 된 것 같다'는 농담은 이런 과정 때문에 한 얘기였다.

베를린의 예술적 힘은 시민의 적극적 참여와 관용, 또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에서 나온다. 

시장 경선에서 독일 최초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정치인을 편견 없이 능력으로 평가하며 무려 14년간 시장으로 지지했고, 

베를린의 상징인 곰을 키워온 오랜 전통조차 비윤리적이라는 지적이 일자 동물원에서 더 이상 키우지 않는 이곳. 

시민의 적극적 참여가 '가난하지만 섹시한' 베를린의 오늘을 만든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