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영치금

바람아님 2016. 3. 15. 23:57
조선일보 : 2016.03.15 03:00

 

30대에 미대 교수와 국제 미술전 감독이 된 신정아씨는 2007년 학력 위조와 미술관 공금 횡령으로 구속돼 1년 6개월을 복역했다. 수사 와중엔 청와대 고위 인사와 엮인 스캔들까지 번졌다. 출소 후 본지 인터뷰에서 그는 영치금(領置金)으로 우유나 과자를 사 먹었다고 했다. "매점 과자가 1년에 한 번쯤 바뀌는데, 입에 물렸던 과자들이 출소 직전에 홈런볼과 맛동산으로 바뀌었어요. 너무 좋았죠. 홈런볼이 얼마나 맛있던지."


▶영치금은 수감자가 음식이나 생필품을 교도소에서 살 수 있도록 가족 등이 교도소에 맡겨둔 돈이다. 수감자 '쌈짓돈'이다. 많게는 1억원 넘는 영치금을 모은 이도 있다. 그렇다고 펑펑 쓸 수 있는 건 아니고 하루 2만원까지만 쓸 수 있다. 대부분 군것질하거나 질 좋은 수의(囚衣) 사는 데 쓴다. 가끔 영치금 '미담'도 등장한다. 몇 년 전 사형수가 100만원을 모아 형편 어려운 환자 수술에 보태달라며 병원에 기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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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영치금 250만원을 얼마 전에 추징했다고 한다. 한 전 총리에겐 징역형과 함께 추징금 8억여 원이 선고됐는데 이를 내지 않아 그랬다고 한다. 추징은 범죄로 얻은 수익을 거둬들이는 것이다. 잡범이면 몰라도 고위직 인사 영치금을 추징한 건 드문 일이다.


▶이를 두고 한 전 총리 측에선 "치졸하다"고 하고 검찰은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고 한다. 추징은 본인 명의 재산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재산을 다른 사람 앞으로 돌려놓으면 받아내기 어렵다. 한 전 총리는 공직자 재산 공개 때 2억원 넘는 은행 예금과 전세 보증금 1억5000만원을 본인 재산으로 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 확정판결 전에 예금 대부분을 인출했고 전세 보증금도 남편 이름으로 돌려놨다고 한다. 그래 놓고 안 낸다고 하니 어쩔 수 없어 영치금을 추징했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추징금은 한 푼도 안 내고 3년이 지나면 시효(時効)가 지나 내지 않아도 된다. 3년 동안 1원이라도 내거나 검찰이 징수하면 그날부터 시효가 다시 연장된다. 추징금 고액 미납자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해 검찰이 일부 액수라도 받아내려 애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영치금까지 추징한 것은 좀 심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한 전 총리가 초래한 일이다. 그는 "정치 탄압"이라며 검찰 조사를 거부했고 대법원 판결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젠 추징금도 안 내겠다고 버틴다. 나라의 재상(宰相) 자리에 있던 사람이 그러는 걸 보면서 국민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최원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