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동서남북] 과학자니까 의원 돼야 한다고?

바람아님 2016. 3. 28. 14:04

(출처-조선닷컴 2016.03.28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이영완 과학전문기자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1번은 인공지능이 뽑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여야 3당의 비례대표 1번이 모두 이공계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정치는 여론에 민감하다.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시점에 당연한 공천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떻든 과학기술과 정치의 만남이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과학기술계는 자신들이 추천한 후보를 정당이 선택하지 않았다고 비판 성명까지 냈다. 
앞서 27개 과학기술단체 모임인 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대과연)은
 "국회에서 심의하는 예산의 3분의 1이 과학기술과 관련된 상황에서 과학적 상식과 합리적 사고 능력을 
갖춘 과학기술 전문가가 국회에 가야 한다"며 여야 정당에 후보를 추천했다.

과학기술계는 정치권이 선거철마다 과학기술을 들러리로만 내세운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대과연의 예산 논리라면 그들이 밀어준 '과학기술 전문가 의원'도 이익집단의 대표와 다를 바 없다. 
과학기술계가 같은 이공계 출신임에도 의사나 약사 의원을 동료로 치지 않는 것도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보기 
때문이지 않은가. 출신이 어디든 오늘날 국회의원이라면 당연히 과학적 소양과 합리적 사고논리를 갖춰야 한다.

과학자도 정치인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과학자에게 의석 배정이 당연하다고 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선택이지 과학기술 단체들이 나서서 할 일은 아니란 얘기다. 
과학기술계가 선거철마다 언급하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 영국의 대처 전 총리, 독일의 메르켈 총리 등은 
평생 과학자로 살다가 한 번 추천을 받고 정치에 입문한 사람들이 아니다. 
프랭클린은 독학으로 성공한 언론인·기업가·발명가로, 자신이 얻은 이익을 사회와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국민의 대표로 
추대됐다. 대처 전 총리는 대학생 때부터 정치 활동을 했다. 메르켈 총리도 16세에 정당 조직에 들어갔다. 
모두 일찍부터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과학자라서, 아니면 과학계에서 
이런저런 자리를 맡았던 사람이라서 국민의 대표가 될 이유는 없다.

과학기술 단체들이 정치에서 해야 할 일은 의원 추천보다 훨씬 많다. 
선거에서 각 정당의 과학기술 정책이 제대로 수립됐는지 검증하는 일을 해야 한다. 
선거철이 아니어도 실험실에서 튀어나와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과학기술 현안을 정치인들이 논의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유전자 변형, 세포 치료, 원자력발전 등 현안이 우리 앞에 쌓여 있다. 
최근 화제가 된 인공지능만 해도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 슬쩍 숟가락을 얹고만 지나갈 주제가 아니다.

16~17세기의 과학혁명은 민주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위대한 과학자들이 자연의 문제를 푸는 데 썼던 합리적 논리를 사회·정치적 문제를 푸는 데 활용하려고 하면서 
민주주의 사상이 발전했다. 
토머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설명한 정치학 저서 '리바이어던'을 원자의 움직임에 대한 묘사로 시작했다.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몽테스키외는 저서 '법의 정신'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정부를 만유인력이 존재하는 우주에 비유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도 선거철에 원조(元祖)의 품격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