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는 소를 몰고 들에 나가 풀을 뜯기며 그 시간에 공책에다 이것저것 그림을 그린다. 서울로 간 경환이는 한 학기 공부를 마치고 여름방학에 시골집으로 돌아온다. 이제 바우와 경환이는 더 이상 살가운 친구가 아니다.
사실, 경환의 아버지는 지주이고 바우 아버지는 소작인이다. 요즘 말로, 경환은 ‘금수저’, 바우는 ‘흙수저’이다. 그런데 경환의 방학 숙제가 나비 표본 채집인데, 이게 문제다. 경환이가 잠자리채를 들고 나비를 잡고자 자기네 땅 참외밭을 휘젓고 다닐 때, 이를 본 바우는 온 가족 생계가 걸린 일 년 농사를 망쳤다며 화를 낸다.
둘은 싸움이 붙었고 유도를 배운 경환이가 바우를 내치려다 오히려 힘센 바우에게 당한다. 마침내 온 동네에 난리가 난다. 경환의 아버지, 지주는 바우의 엄마를 불러 불호령을 내린다. 바우가 나비를 잡아다 경환이에게 주면서 잘못했다고 빌지 않으면, 더 이상 땅을 부쳐 먹을 생각도 하지 말란 것이다.
이에 바우는 부모에게 이래저래 혼쭐이 난다. 어머니는 그래도 밥을 챙겨주려고 하나 바우는 밥맛이 없어 들판으로 나간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무조건 빌라고 하니, 아무리 부모라도 이건 아니다. 바우의 똥고집이자 줏대다. 풀밭에 누워 풀꽃을 물고 하늘을 보는데, 문득 저 건너 메밀밭에 사람이 일렁인다. 무엇인가를 잡는 듯 분주하다. 경환이 나비를 잡나보다 했는데, 나중에 다가가 자세히 보니 자기 아버지가 아닌가. 여기서 이야기는 끝나고, 내 가슴도 먹먹해지며 눈시울마저 젖는다.
당시 10대 청소년에 불과한 바우의 심정은 어땠을까?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누구는 금수저라 서울에서 공부하며 나비 채집 한답시고 온 참외밭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도 되고, 누구는 공부를 잘해도 흙수저라 소나 키우며 농사를 지어야 하는 신세다. 얼마나 원망스러운가? 어릴 때 같이 놀던 친구였는데, 그 옛날 어깨동무는 어디로 가버렸나?
작가는 아마도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발휘해 끝을 이어가라 말한 듯하다. 많은 시나리오가 가능하겠지만, 얼핏 세 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첫째는, 옹고집 바우조차 자기 대신 나비 잡는 아버지에게 연민과 죄책감을 느껴 체념하고 만다. 아버지랑 같이 나비를 잔뜩 잡아 지주 집에 갖다주고 경환이에게는 마음에도 없는 용서를 빈다. 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리는 시나리오다.
둘째는, 자존감 넘치는 바우가 부모를 설득시켜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는 것이다. 사실, 바우의 부모들도 그동안 지주와의 관계에서 온갖 억울한 일들을 많이 참아온 터였다. 그래서 좀 더 선량한 지주와 노는 땅을 찾아 떠난다. 약간 새로운 국면을 만드는 시나리오다.
셋째는, 지혜로운 바우가 동학농민혁명의 녹두장군처럼, 부모를 비롯한 온 동네 소작인들을 모조리 조직, 당국이 토지개혁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겠노라고 농사 파업을 선언하는 것이다. 온 나라 소작인들이 동참하고 마침내 민주적 토지개혁이 일어나, 농지가 고루 분배되어 농민들이 즐겁게 경작한다. 앞 사례들과 전혀 다른 국면을 여는 시나리오다.
바우와 경환이네 이야기는 지주-소작 관계를 다루지만, 오늘날 이것은 부자 아파트 아이들과 임대아파트 아이들 이야기로 연장될 수 있고, 또 대기업 사원 주택단지에서 만나는 임원급 부인과 평사원 부인 간의 관계와 등치될 수도 있다. 심지어 육군 대령 부인이 옆집에 사는 장성 집 김장까지 담가주기도 했다. 모두, ‘계급관계’ 때문이다.
창창한 청년 시절, 영국 제국주의의 경찰로서 5년 동안 버마(현 미얀마)에 살았던 조지 오웰은 자신과 현지인 사이의 원만한 관계를 ‘평등 없는 친밀성’이라 성찰했다. 이를 응용하면,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바우네는 ‘평등 없는 냉혹성’만 경험한다. 우리네 현실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좀 낫긴 하나 기껏해야 ‘평등 없는 친밀성’만 느끼게 한다.
그러나 세 번째 시나리오는 ‘평등한 친밀성’의 새 관계를 연다. 약자들이 연대하여 단호한 투쟁으로 여는 새로운 세계다. 과연 바우네는 실제로 어떤 길을 걸어갔을까? 그리고 지금 여기,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나?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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