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철학 통해 죽음을 파헤쳤던 그… 실제로 죽음 경험한 후엔 감각을 칭송
자신의 내부 들여다보며 '수상록' 집필몽… 테뉴는 말한다, 사는 것은 생각하는 것
몽테뉴(1533~1592)는 서재 천장으로 팔을 뻗어 몇 해 전 들보에 적어 놓았던 문장 하나를 지웠다.
16세기가 저물어갈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없애버린 경구(警句)는 "더 오래 살아도 새롭게 얻을 낙은 없다"(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
막역한 친구 라 보에티, 존경했던 아버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다섯 자녀를 차례로 잃는
불행을 겪은 뒤 법관직을 사퇴하고 은거하면서 '어슬렁어슬렁 죽음을 향해 기어가야겠다'
다짐하며 옮겼던 글이다. 그것을 지웠으니 '삶의 철학'으로 나아갈 참이었다.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160.37-ㅍ82ㄴ/ [정독]인사자실(2동2층) (오른쪽 사진)몽테뉴의 초상화. 그는 “술을 시음하듯 인생의 맛을 알고 싶어 글을 쓴다”고 했다. /책읽는수요일 제공 |
역사는 몽테뉴를 '자기 자신에 대해 쓴 최초의 철학자'로 기록한다.
이 프랑스 사상가는 근대 철학의 창시자 데카르트("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달리 절대적인 확실성을 주장하지
않았다. 음울한 중세 그리스도교와 태동하는 과학 사이에서 일상이 경시될 무렵, 몽테뉴는 '수상록(Essais)'을 집필하며
삶 자체에 집중했다. 다들 앞을 바라볼 때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본 셈이다.
◇철학은 죽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다?
"무서운 깊이 없이 아름다운 표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니체가 '비극의 탄생' 서문에서 그리스 예술을 가리켜 한 말이다.
◇철학은 죽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다?
"무서운 깊이 없이 아름다운 표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니체가 '비극의 탄생' 서문에서 그리스 예술을 가리켜 한 말이다.
16세기는 도처에 죽음이 있었다. 난폭한 전쟁과 전염병이 사람들을 쓰러뜨렸다.
'수상록'은 몽테뉴를 덮친 극한의 불행 때문에 더 숭고하다.
문학이 죽음에 대한 상상에 큰 빚을 지고 있듯이, 그는 폐허 위를 검시(檢屍)하듯 맴도는 상념 속에서 글을 써나갔다.
몽테뉴는 정념이나 감각으로부터 이성을 분리시키는 스토아철학을 무기로 죽음과 싸웠다.
몽테뉴는 정념이나 감각으로부터 이성을 분리시키는 스토아철학을 무기로 죽음과 싸웠다.
초기 작품 중 하나에 '철학은 죽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다'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낙마(落馬) 사고로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면서 회의(懷疑)에 빠진다.
인간의 정신은 육체와 단단하게 묶여 있고, 우리는 늘 비틀거리며 불확실성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그는 내세를 동경하는 그리스도교적 인문주의자에서 벗어나 인간과 육체, 자연 쪽으로 이끌린다. 염세주의와의 결별이다.
몽테뉴는 손에 잡히는 것으로 돌아간다. 신체가 느끼는 감각을 칭송하며 스토아철학을 내던진 것이다.
"우리는 자기 안에 머물지 않고 늘 자신을 초월하는 곳에서 맴돈다.
앞날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에 정신이 팔려 현재에 대해 느끼거나 생각할 시간을 놓치는 것이다."
◇동물의 관점에서 인간을 읽다
몽테뉴 작품에는 동물이 자주 등장한다.
◇동물의 관점에서 인간을 읽다
몽테뉴 작품에는 동물이 자주 등장한다.
글을 쓰는 까닭에 대해 "말을 길들이듯 기분을 가다듬고 성질을 한풀 꺾어놓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 대목에서 돈키호테가 떠오른다. 그는 나흘 고민 끝에 자기 말에 로시난테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퇴역한, 짐 나르는 말'이라는 뜻이다. 늙은 자신을 빗댄 것이었다.
동물의 가치를 깎아내린 데카르트와 달리, 몽테뉴는 "사람은 동물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한다"고 썼다.
동물의 가치를 깎아내린 데카르트와 달리, 몽테뉴는 "사람은 동물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한다"고 썼다.
동물에게 언어가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놀 때 사실은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이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 구절에선 몽테뉴의 회의주의가 즉물적으로 만져진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담을 세우지 않고 인간을 창조 사슬의 일부분으로 보았다(우리는 이것을 '진화'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그는 더없이 인간적이다.
◇인생의 맛을 발견하다
이 책은 몽테뉴의 일생을 추적하며 삶이 어떻게 철학을 탄생시켰는지 들려준다.
◇인생의 맛을 발견하다
이 책은 몽테뉴의 일생을 추적하며 삶이 어떻게 철학을 탄생시켰는지 들려준다.
당신이 평범함의 힘을 알고 '지금 여기'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면 400여년 전 몽테뉴에게 감사할 일이다.
허무주의의 대표 철학자 니체도 "몽테뉴의 글 덕분에 이 세상을 사는 기쁨이 커졌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와 함께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다.
몽테뉴는 신장결석으로 삶의 끄트머리로 몰리면서도 작은 것들을 눈에 담고 글로 옮겼다.
몽테뉴는 신장결석으로 삶의 끄트머리로 몰리면서도 작은 것들을 눈에 담고 글로 옮겼다.
말 한 필, 책 한 권, 와인 한잔…. 에세이 '나태에 대하여'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농작물이 싹트고 자라기 시작하면 갖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심는 일은 힘들지 않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다양한 걱정거리를 떠안게 된다."
여생을 술통 밑에 가라앉은 앙금에 비유하기도 했다.
르네상스 문학에 정통한 저자는 "몽테뉴는 근대 개인주의 문학의 창시자"라면서
르네상스 문학에 정통한 저자는 "몽테뉴는 근대 개인주의 문학의 창시자"라면서
"셰익스피어의 '햄릿' '템페스트'에도 몽테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했다.
여행·섹스·자아 등 열두 갈래로 몽테뉴를 들여다본 책이다.
그는 마치 결론처럼 '사는 것이 곧 생각하는 것'이라고 썼다. 답 안 나오는 힐링 서적보다 낫다.
삶에 무덤덤해진 독자에게 더 황홀하게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