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09.19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선물은 수많은 원시사회서도 중시… 상호 결속력 다지려는 의무 담겨
받는 사람이 즐거운 선물 크기는 환경 따라 변하는 기대치에 달려
제대로 주고 받고 갚으며 살 때 서로 믿고 존중하는 행복 다가와
인류학의 고전 중 마르셀 마우스(Mauss)의 '선물'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수많은 원시 사회에서 발견되는 공통점 하나는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대단히 중시한다는 것이다.
상호 결속력을 다지는 역할을 하는 이 행위는 암묵적으로 세 가지 원칙을 포함한다.
상황에 따라 무엇을 주는 의무, 그것을 고맙게 받는 의무, 그리고 훗날 그것을 갚는 호혜의 의무가
선물 행위에 담겨 있다.
이 복잡 미묘한 의무들을 세련되게 지키지 못하면 부족 생활이 피곤해졌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추석과 같은 명절이 오면 늘 무엇을 주고받고자 했던 이 근원적 습성 때문에 고민이 생긴다.
그래서 추석과 같은 명절이 오면 늘 무엇을 주고받고자 했던 이 근원적 습성 때문에 고민이 생긴다.
특히 올해는 새로운 법까지 생겨 고민은 더 컸으리라 짐작된다. 선물의 목적은 상대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받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선물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받는 사람의 기대 크기가 결정적이다.
최근 읽은 기사 하나가 생각난다.
1950년대의 인기 추석 선물은 계란과 같은 직접 키운 농축산물,
1960년대는 설탕이나 양말,
그 후 치약이 등장했다고 한다.
소박함이 웃음을 짓게 한다. 그렇지만 막상 이번 추석 때 누군가로부터 설탕 한 봉지를 선물받았다면 꽤나 황당했을 것이다.
1960년대의 설탕보다 지금의 설탕이 덜 희거나 덜 달 리는 없다.
설탕이 변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대 수준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대감이라는 것은 행복 공식(행복=성취/기대)에 있어서 중요한 한 꼭지다.
어떤 기대들은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는 대표적인 기대치가 돈에 대한 생각이다.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는 대표적인 기대치가 돈에 대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돈이 많고 적고는 본질적으로 비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화폐를 700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나의 부를 가늠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들이 얼마를 가졌는지, 혹은 지난달에 비해 얼마나 더 갖고 있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돈과 행복의 관계는 복잡하다.
소득 수준만으로는 행복을 예측하기 어렵고, 분모 역할을 하는 기대치를 함께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이 기대치는 수많은 요인에 의해 바뀐다.
가령 주변 사람이 모두 부유해지면 자신도 당연히 부유해져야 한다고 기대한다.
그래서 국가 전체가 부유해져도 국민의 행복은 변하지 않는다는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돈이나 선물과는 달리, 절대적인 기준치를 충족시켜야 하는 행복의 조건들이 있다.
배고픔이나 추위같이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경험들은 상대적 우위가 아닌 절대적 충족을 필요로 한다.
다른 사람의 식사량과 나의 배고픔은 별개의 문제다.
이처럼 시대나 상황을 막론하고 항상 필요한 행복 조건 중 하나가 사회적 욕구의 충족이다.
인류의 여정에서 사회적 고립은 거의 예외 없이 죽음으로 연결되었다.
그래서 우리 DNA에는 '어떻게든 사람과 함께하며 즐길 것'이라는 선조의 유언이 담겨 있다.
행복한 사람의 독보적 특성이 풍성한 사회적 관계라는 연구 결론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사회의 행복을 진단할 때, 경제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회의 행복을 진단할 때, 경제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경제 수준만으로 보면 높은 행복감을 보고하는 국가들(가령 뉴질랜드)과 우리의 차이는 근소하다.
큰 격차는 비물질적 영역에서 나타나는데, 그중 하나가 사회적 부(富)라는 영역이다.
상호 신뢰와 존중으로 요약되는 이 부분에서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인다.
행복의 기초가 되는 사회적 욕구 충족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뜻인데, 주지도 받지도 않는 삶은 이 문제를 가중시킨다.
행복은 제대로 주고, 받고, 갚으며 사는, 좀 더 자연스러운 삶에 더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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