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모처럼 룰루랄라 즐거운 산행에 나섰다가 산책길에 나타난 멧돼지 소식을 스마트폰에서 접한다. 이 아름다운 나라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험악한 일 아닌가. 일찌감치 흥분한 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짜 맞춘다. 우리 막내가 멧돼지에게 물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멧돼지는커녕 쥐새끼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고 우리 가족은 상처 하나 없이 산행을 마무리했다.
상상 속의 강박관념처럼 무서운 적(敵)은 없다. 밑도 끝도 없이 불쑥 고개를 내민 다음부터는 어떤 추론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설과 허공, 바람을 상대로 불안하고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걱정의 질곡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의 조언이 때론 허황하게 들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당장 불안하고 무서워 죽겠다는 사람에게 “걱정하지마”라든가 “다른 생각을 해봐”라고 조언한들 무슨 소용인가.
톨스토이가 정곡을 찔렀다. “백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결국 백설처럼 빛나는 털로 뒤덮인 덩치 큰 짐승 하나가 머릿속에 떠오르고 만다.” 어떤 생각을 억누르고 내몰려고 하면 십중팔구 그 생각은 더 큰 도약으로 나를 덮친다.
고백하건대 평소 잔걱정이 많아 고생하던 나는 서울의 한 의사를 찾아가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그 의사는 다짜고짜 분홍색 알약이 든 작은 봉지를 내밀었다. 걱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은 사람에게 좀 색다른 처방은 없을까.
참선은 매일 귀가 따갑게 가르친다. 너의 강박관념을 그냥 놓아두라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것에 저항하지도 말라고. 머릿속에서 재앙의 시나리오가 저 혼자 흘러가는 걸 물끄러미 지켜볼 것. 침을 뚝뚝 흘리는 무시무시한 야수의 아가리에 끌려가지도 도망치지도 말고 그냥 지켜만 볼 것.
불안은 못된 반사 신경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에게 이유 없는 행복이 찾아드는 것을 가로막는다. 즐거움엔 반드시 대가가 따르고, 좋은 순간은 꼭 그만한 값을 치러야 한다는 식이다. 영혼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런 계산이 아니라 천진난만한 선의다. 왜냐고 묻지 않는 삶에 뛰어들지 못하게 우리의 발목을 잡는 해로운 죄의식과 무능함에 작별을 고해야 한다.
어제 잘못했어도 오늘은 더 나빠질까 걱정하지 말고 기쁨을 찾아갈 수 있는 어린아이의 순박한 마음이 필요하다. 걱정과 두려움은 과거에서 상처를, 미래에서 불운만을 따지는 영혼에 즐겨 터를 잡는다.
에픽테토스는 말한다. 마치 야간경비원처럼, 화폐감시원처럼 자신의 생각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그래서 덧없는 망상과 예상, 회한을 떨쳐내 실재하는 것만을 보고 단단한 땅에 발을 딛고 설 줄 알아야 치유가 가능하다고.
내가 처한 모든 상황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가려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불안이 무서운 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현실과의 접점을 잃게 한다는 점이다. 나를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고, 나의 과거나 미래를 시비 걸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와 동행해 주는 현실. 그 밖에 모든 것은 나의 속 좁은 간섭, 성급한 딴지의 결과일 뿐이다.
어둠이 무섭다고 유령이 나타날까봐 혼자 있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세상에 유령은 없다며 타이르고 설득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어둠을 함께하면서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해주는 것이 해결책이다.
스위스 철학자 / 번역 성귀수
[중앙일보]
입력 2016.09.10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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