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가슴으로 읽는 한시] 12월 7일의 일기

바람아님 2016. 12. 24. 16:29

(조선일보 2016.12.24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12월 7일의 일기


인간만사 아무리 떠올려 봐도

마음에 끌리는 것 하나 없지만


한 가지 고질병은 여전히 남아

아첨(牙籤)에 꽂힌 책을 사랑한다네.


일년처럼 긴 하루를

어찌하면 얻어내어


보지 못한 천하의 책을

남김없이 읽어볼거나.

初七日戊子


萬事思量無係戀

(만사사량무계련)


惟有牙籤一癖餘

(유유아첨일벽여)


安得一日如一年

(안득일일여일년)


讀盡天下未見書

(독진천하미견서)


[가슴으로 읽는 한시] 12월 7일의 일기


통원(通園) 유만주(兪晩柱·1755~1788)가 서른 살 때인 1784년 12월 초이레 아침에 썼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밤새 큰눈이 내려 쌓였는데 그 위에 또 눈이 내리고 바람이 크게 불었다. 

몹시 추워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고 베개 위에서 시상을 가다듬어 시를 지었다. 추운 겨울이 되어 한 해도 저물어간다. 

내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봐도 좋을 때다. 

이것저것 떠올려 봐도 마음이 쏠리는 일이 하나 없다. 

오로지 하나, 아첨(牙籤·상아 찌)을 꽂아 서가에 쌓아둔 책을 읽는 것 하나만이 마음을 사로잡을 뿐이다. 

1년 365일처럼 긴 하루는 없을까? 아직 읽지 못한 천하의 모든 책을 그 하루에 모조리 읽어버리고 싶다. 

저물어가는 한 해가 아쉬운 것은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