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24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12월 7일의 일기 인간만사 아무리 떠올려 봐도 마음에 끌리는 것 하나 없지만 한 가지 고질병은 여전히 남아 아첨(牙籤)에 꽂힌 책을 사랑한다네. 일년처럼 긴 하루를 어찌하면 얻어내어 보지 못한 천하의 책을 남김없이 읽어볼거나. | 初七日戊子 萬事思量無係戀 (만사사량무계련) 惟有牙籤一癖餘 (유유아첨일벽여) 安得一日如一年 (안득일일여일년) 讀盡天下未見書 (독진천하미견서) |
통원(通園) 유만주(兪晩柱·1755~1788)가 서른 살 때인 1784년 12월 초이레 아침에 썼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밤새 큰눈이 내려 쌓였는데 그 위에 또 눈이 내리고 바람이 크게 불었다.
몹시 추워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고 베개 위에서 시상을 가다듬어 시를 지었다. 추운 겨울이 되어 한 해도 저물어간다.
내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봐도 좋을 때다.
이것저것 떠올려 봐도 마음이 쏠리는 일이 하나 없다.
오로지 하나, 아첨(牙籤·상아 찌)을 꽂아 서가에 쌓아둔 책을 읽는 것 하나만이 마음을 사로잡을 뿐이다.
1년 365일처럼 긴 하루는 없을까? 아직 읽지 못한 천하의 모든 책을 그 하루에 모조리 읽어버리고 싶다.
저물어가는 한 해가 아쉬운 것은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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