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때 저절로 자세가 경건해지는 책이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앉아 책장을 한장 한장 신중하게 넘기게 되는 그런 책 말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를 정리한 '담론'을 사 들고 들어와 허겁지겁 첫 장을 넘긴 후부터 마지막 장을 닫을 때까지 나는 강의실 구석에 앉은 착한 학생이 되어 내내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었다. 불현듯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 뜬금없이 가슴이 뜨거워졌다가 나의 보잘것없는 지식과 언어의 왜소함에 한없이 부끄러워져 이미 읽어 버린 어떤 문장 위에서 한참을 서성거리기도 했다.
'반갑습니다. 이번 강의가 마지막 강의입니다'로 시작해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의 글귀를 함께 읽어나갔다. 첫 번째 페이지를 넘기자 어느새 나는 가본 적도 없는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난로에서는 주황색 불꽃이 넘실넘실 춤을 추고, 책상이 뿜어내는 맵싸한 나무 냄새에 코끝이 간질거려 금방이라도 한바탕 재채기를 쏟아 낼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요즈음 그런 강의실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나는 분명코 어둑어둑 창밖으로 해가 지는 그런 강의실 창가에 앉아 있었다.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읽어오지 못한 교재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지고, 속이 타들어가 '평상시 공부 좀 하지' 스스로를 책망했다. '벗이 될 수 없다면 스승도 될 수 없다'는 중국 명나라 사상가 이탁오(李卓吾)의 단호함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렇게 강의실 여행을 끝내고 책장을 덮자 초라한 일상이 형광등 불빛 아래 적나라하게 몸을 드러냈다. '끄응'하고 몸을 일으키는데 그사이 화석처럼 굳은 몸이 우두둑우두둑 비명을 지른다. 그런데 얼굴은 제멋대로 웃고 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책도 마찬가지로 자기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필자는 죽고 독자는 끊임없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한 권의 책이 망치가 되어 머리를 후려갈기는데, 아…. 나는 행복하다고 낮게 중얼거리게 되는 그런 아침이다.
길해연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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