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복하면 '한국의 핀란드화' 우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사태에 따른 중국의 보복이 그칠 줄을 모른다. 지난주에도 국립발레단 김지영씨의 상하이 공연이 취소되고 선양에서 진행되던 롯데월드 공사도 중단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중국은 한국에 하듯 수 틀리면 경제제재를 일삼는 나라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중국은 러시아를 제치고 가장 많은 16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인접국과 자주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란 얘기다. 실제로 1962년에는 인도와 국경전쟁을 벌였고 지금도 남중국해 섬을 놓고 베트남·필리핀과 영토분쟁 중이다.
하지만 중국은 베트남·필리핀은 가만 두고 있다. 베트남은 대중(對中) 교역 비중이 단연 높다는 점에서 한국과 마찬가지다. 2015년 한국이 23.6%이고 베트남은 20.3%. 양국 모두 부동의 1위다.
그럼 중국의 대응은 왜 다른가. 역사에 답이 있다. 베트남인은 중국은 물론 프랑스·미국과도 싸워 이긴 결기의 민족이다. 79년 중국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베트남을 침공했다 2만 명 이상의 사상자만 내고 퇴각해야 했다. 2014년에는 분쟁 수역에 중국 석유시추 시설이 설치되자 베트남에서 함정을 파견, 무력 충돌까지 빚어졌다. 당시 베트남 내에서는 대규모 반중 폭력시위가 터졌다. 중국 공장이 불에 타고 2명의 중국인 사망자를 비롯, 2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선 어떤 베트남 정권이든 중국의 압력에 굴복했다간 견딜 재간이 없다. 그러니 중국도 경제제재쯤으론 통하지 않을 걸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2000년 중국산 마늘에 대한 관세를 올렸다가 휴대전화 및 폴리에틸렌 수입금지라는 카운터펀치 한 방에 당장 백기를 들었다. 지금은 사드 배치를 놓고 국론이 갈기갈기 찢겨 있다. 이러니 중국이 만만히 볼 수밖에 없다.
이번에 무릎을 꿇으면 중국 관련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쪽 눈치를 보게 될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한국이 굴욕적인 ‘핀란드화(Finlandization)’의 길로 접어든다는 얘기다. 핀란드화란 약소국이 옆에 붙은 강대국의 힘에 눌려 자주성을 잃는 것을 뜻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과 두 차례의 전쟁을 겪은 핀란드는 독립을 보장받는 대신 냉전 내내 친소 정책을 택해야 했다.
‘한국의 핀란드화’가 도래하면 부작용이 숱할 것이다. 정치적 종속은 물론 중국 경제가 곤두박질칠 경우 한국이 입을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핀란드도 90년 소련 경제 붕괴 후 3년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0%나 줄었고 실업률은 18%로 치솟았다. 소련 경제에 지나치게 기댄 업보였다.
이런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선은 힘들어도 결코 쉽게 머리 숙여선 안 된다. 1880년 청나라의 초대 주일공사 하여장(何如璋)은 영국 외교관에게 ‘조선인 다루는 법’이라며 이렇게 조언한다. “조선인들은 어린아이 같아서 거친 방법은 소용이 없지만 친절하게 달래면서 숨겨진 힘을 적절히 내비치면 쉽게 따른다”고. 이런 뒤틀린 인식이 이어지는 한 중국의 압력은 계속될 게 뻔하다.
긴 호흡으로 인도·인도네시아 등으로의 수출을 늘리면서 시장 다변화에 힘쓰는 것도 또 다른 대책이다. 이번 사드 사태로 중국시장 올인이 얼마나 위험한지 기업들도 절감했을 것이다.
답은 나와 있다. 다만 당장의 어려움을 풀지 못하는 게 문제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한·중 갈등은 미군 보호를 위해 사드를 들여오려다 벌어진 일이다. 동맹군 보호를 위해 방어용 장비를 도입한다는 건 명분과 실리 모두 충분한 일이다. 다만 한쪽 당사자인 미국은 쏙 빠진 채 우리만 중국의 융단폭격을 뒤집어 쓰는 건 불공평하다. 중국을 달래든, 겁을 주든 미국이 나서서 사태를 진정시키는 게 답이다. 그러니 우리 당국자가 미 고위층을 만나 “사드 문제에 관한 한 결자해지(結者解之)하라”고 요구해 관철하는 게 발등의 불을 끄는 지름길이다.
남정호 논설위원
'時事論壇 > 時流談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천석 칼럼] 남북 정상회담 幻想 끝났다 (0) | 2017.02.17 |
---|---|
[노트북을 열며] 리더의 자격 (0) | 2017.02.16 |
[기고] '사드 배치 철회' 땐 각오해야 할 것들 (0) | 2017.02.13 |
[복거일 칼럼]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의 책무 (0) | 2017.02.12 |
[朝鮮칼럼 The Column] 경마장 된 한국 정치, 누구를 위한 선거인가 (0) | 2017.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