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생각을 깨우는 한시 (25)] 계간기능류득주(溪澗豈能留得住) 종귀대해작파도(終歸大海作波濤)

바람아님 2017. 2. 23. 23:39
한국경제 2017.02.22 17:16

溪澗豈能留得住 계간기능류득주
시냇물이 어찌 멈춰 설 수 있으랴.

終歸大海作波濤 종귀대해작파도
큰바다로 돌아가 파도가 되어야지.

중국 장시(江西)성 주장(九江)지방에 있는 루산(廬山·여산)은 폭포가 유명하다. 루산폭포를 보지 못했다면 루산에 온 것이 아니라고 할 정도였다. 시인 이백(李白 701~762)은 이 폭포 앞에서 “긴 시냇물을 걸어놓은 것 같고(遙看瀑布長川),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하다(疑是銀河落九天)”는 절창을 남긴다. 소동파(1036~1101)는 산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루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不識廬山眞面目)”고 찬탄했다. 폭포의 명성은 한반도까지 미쳤다. 조선의 화가인 겸재 정선(1676~1759)은 ‘여산폭포’ 그림까지 남겼다.


《벽암록》 11칙(則)에 의하면 향엄 지한(香嚴智閑 ?~898) 선사도 루산폭포를 찾았다고 한다. “구름과 바위를 뚫고도 그 수고로움을 말하지 않았으니(穿雲透石不辭勞) 저 멀리 높은 곳에서 왔다는 것을 비로소 알겠다(地遠方知出處高)”고 ‘선시 스타일’로 한 수 읊었다. 함께 갔던 어린 사미승인 대중(大中)도 질세라 연이어 두 줄로 화답했다. 그는 왕자 신분이었다. 궁중의 권력암투로 잠시 사찰로 피신해 머리를 깎은 상태였다. 그런 전후사를 알 리 없는 지한 선사는 이 시를 통해 그가 예사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뒷날 즉위하여 선종(宣宗) 황제가 되었다. 사미 시절 지은 시처럼 멈추지 않는 시냇물로써 마침내 바다로 돌아간 것이다.


필자도 십여년 전에 루산의 혜원(廬山慧遠 335~417) 스님이 머물렀던 동림사(東林寺) 순례를 위해 루산을 찾았다. 혜원 스님은 30년 동안 일주문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약속은 절친을 전송하면서 마지노선인 입구 계곡(虎溪)을 자기도 모르는 새 넘어 버렸다. 아차! 하며 그 사실을 벗들에게 털어놓으니 세 명(유교 도연명, 도교 육수정, 불교 혜원)이 함께 웃었다는 ‘호계삼소’는 뒷날 우정을 상징하는 표제어가 됐다. 일정에 없는 탓에 루산폭포는 볼 수 없었지만 폭포보다 더 아름다운 ‘루산의 진면목’인 옛어른들을 뵙는 기쁨을 누렸다.


원철 <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