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모습 참담" 자성이 체제붕괴 싹 될 수도
나흘 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평양 조선혁명박물관을 방문했다. 연건평 8만㎡가 넘는 규모로 증축해 신장개업한 이곳은 빨치산 활동을 시원으로 노동당 통치 70여 년간의 족적이 집대성돼 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TV의 초점은 박물관 시설이나 전시물을 비켜갔다. 대신 김정은이 휠체어를 탄 한 고령의 여성을 껴안고 손을 잡은 채 만면의 웃음을 띠는 장면에 집중했다. 조선혁명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올해 98세의 황순희였다.
황순희는 빨치산 활동 당시 김일성 유격대의 간호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방 이후 북한에 귀환해 민주여성동맹 간부를 맡는 등 김일성 정권의 핵심 인물 중 하나로 자리했다. 그 상징성 때문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권력 내 지위를 점유했다. 게다가 그의 남편 유경수는 6·25전쟁 당시 서울에 가장 먼저 진주해 중앙청에 인공기(人共旗)를 게양했던 제105 탱크부대의 여단장이다. 김정은이 1월 말 기갑부대의 동계 도하훈련을 참관한 뒤 “남조선 괴뢰들을 불이 번쩍 나게 와닥닥 쓸어버리도록 하라”고 언급했던 최정예 부대다.
최고지도자가 황순희를 끌어안는 모습은 북한 주민들에게 낯설지 않다. 김일성은 물론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 여러 차례 써먹은 방식이다. 김정은도 집권 첫해인 2012년 4월과 7월에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북한 고위층 출신 탈북 인사는 “황순희는 물이 빠질 대로 빠진 인물”이라고 일갈했다. 김일성 시기부터 우려먹을 대로 써먹는 바람에 더 이상 약발이 없는데도 노동당 선전선동가들이 ‘마른 수건 짜듯’ 고집한다는 얘기다.
김정은의 다급한 속사정을 짚어보면 이해가는 구석도 있다. 6년 전 김정일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절대권력을 넘겨받은 27세 청년지도자는 디딜 땅이 없었다. 3~4년간 속도전식 속성 후계수업을 받았지만 서툴렀다. 1974년 2월 노동당 5기8차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낙점된 후 20년간 공동정권에 가까운 제왕학 실습을 거친 아버지와 차이가 났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헤어스타일과 패션은 물론 말투와 미세 동작까지 차용해 권좌에 앉았다. 그렇지만 마음은 허할 수밖에 없었다. 수령 김일성의 적통(嫡統)임을 증빙할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조차 없었다. 의식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황순희를 3월의 광장으로 끌어내 인증샷을 남긴 이유다.
북한에서 빨치산은 영원한 ‘갑(甲)’이자 기득권층이다. 김씨 일가의 절대권력 치하에서 안위를 누릴 수 있는 생존방법을 가문 내력으로 터득·전수해왔다. 정치행사에서 적당히 박수 쳐주고 사진 찍으며 충성맹세하면 편한 세상이란 걸 잘 알고 처신했다.
하지만 은밀하고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게 고위 탈북인사의 귀띔이다. 젊은 빨치산 후예들과 파워엘리트 그룹 내부에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 권력 중추세력인 군부 원로와 고위 장성을 부하와 어린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가벗겨 공개 처형하는 김정은 통치의 반인륜성에 등을 돌린다고 한다. 어느 북한 내부 문건에는 “가장 참담한 것은 20대 젊은이의 손에 어느날 훌쩍 맡겨진 이 나라, 그의 정신적 미숙함과 무지함이 불러오는 이 참상 앞에서도 겁에 질려 침묵에 잠긴 우리들의 모습”이란 차세대 엘리트들의 ‘집단지성’이 등장한다. 3대 세습통치와 김정은식 공포정치에 대한 울분이 저항의 목소리로 움터나고 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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