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5.11 윤명숙·화가 박서보 아내)
1970년 초를 기점으로 남편은 색(色)은 죽이고, 이미지는 지우며, 자연에 순응하는 자세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작품들을 후세 사람들이 '단색화'라 이름 지었다.
남편의 대학 강사 수입으로 아이 셋을 키우며 가난하게 살던 시절이었다.
사실은 거의 50년 세월을 작업실 구석에서 먼지 뒤집어쓴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디지털 세상에 끌려 나왔고, 요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랑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는 것이다.
2015년 봄 베네치아에서 국제화랑 주최로 한국 '단색화전'이 열렸다.
같은 시기에 열린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찾았던 많은 관객이 어찌 된 셈인지 한국의 '단색화전'에 몰려와 법석을 떨더니
그 여파가 서울 성산동 박서보 작업실 구석에서 잠자고 있던 연필 묘법을 덮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스님이 수행 도구로 목탁을 두드리듯이 캔버스 위에 연필로 수천 번 선을 그어 수행 흔적을 남겼는데
그 작품의 명제가 '묘법'이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노동이다.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놓고 작업대 위에 무릎 꿇고 엎드려 몇 시간씩 쉬지 않고 한다. 완전히 수행 자세다.
신들린 사람처럼 사람 무게를 못 이겨 출렁대는 작업대 위에서 무릎걸음으로 옮겨 다니며 캔버스 위에 수만 번
연필을 그어댄다. '묘법' 시리즈는 80년대 후반으로 넘어오면서 차츰 변화한다.
캔버스 위에 한지를 덧씌우고 연필은 굵은 '콩테'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바뀌었다고 해도 처음부터 일관되게 바뀌지 않는 것은 그의 정신세계의 바탕이 되는 자연관이다.
남편이 칠순 되던 해인가? 개인전 때문에 도쿄에 갔을 때다. 개막날 때아닌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우린 날씨를 핑계 삼아 후쿠시마 현 산정에 올라 반다이산 계곡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안개 낀 호수를 끼고 천천히 순환로를 따라 내려오는 단풍 길은 온통 불타는 듯했다.
남편은 붉은색에 완전히 압도당한 듯했는데 서울에 오더니 작품에 색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보면 힐링이 된다고 한다. 요즘은 그에게서도 맑고 천진한 어린아이 모습이 보인다.
2014년 11월 파리 페로팅 갤러리에서 한국 단색화가 박서보 개인전이 개막했다.
사진은 전시된 그림 앞에 서있는 박서보 화가. /조선일보 DB
박서보, 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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