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時事·常識

<뉴스와 시각>시대착오적 '역사 연금술'

바람아님 2017. 6. 13. 10:14
문화일보 2017.06.12. 11:55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만큼 시대의 필요에 따라 자주 호명된 인물도 드물다. 오죽했으면 2009년 오만 원권 지폐의 모델로 사임당이 거론됐을 때 여성계가 나서서 반발했다. 유교 가부장제의 상징처럼 된 사임당을 다시 소비하는 데 대한 반발이었다. 역사학자 5인이 얼마 전 펴낸 ‘신사임당, 그녀를 위한 변명’(다산기획)은 시대와 권력이 만들어낸 신사임당의 이미지 변천사를 다뤘다. 16세기 초 사람인 사임당은 ‘신 씨’ 혹은 ‘동양 신 씨’로 불리다가 18세기에 명칭이 ‘사임당’으로 바뀐다. 당대 노론의 영수였던 송시열은 공자-노자를 잇는 인물로 율곡을 추숭하는 과정에서 신사임당을 ‘유교적 어머니’로 만들었다. 시서화에 모두 능했던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의 실체는 희미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여성교육의 목표인 ‘현모양처’로, 후방에서 전쟁을 돕는 ‘총후부인(銃後婦人)’으로까지 동원됐다. 박정희 정권 때는 사임당에게 다시 국모(國母)의 이미지가 덧씌워지는데, 육영수 여사와 동일시 하려는 권력의 의도로 학계에선 본다.

최근 뜨거운 감자가 된 가야사 속의 ‘허황후’는 신화가 역사로 둔갑한 경우다. 이광수 부산외국어대 인도학부 교수가 올 초 펴낸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푸른역사)는 그 과정을 분석했다.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의 비(妃)인 허황후는 인도 아유타국 출신 공주로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기록돼 있다. 왕조가 반석 위에 오르면 후손들은 건국 시조를 신화로 윤색한다. 후대 조선의 용비어천가도 그 내용 자체를 사실로 보진 않는다. 유독 ‘허황후’의 설화는 1000년이 넘는 동안 여러 차례 조작을 거쳐 실재 인물로 정착한다. 때로는 왕족이, 때로는 권세 가문이, 때로는 불교 사찰이 스스로 정통성을 갖추기 위해 허황후를 실체화했다. 근래에는 지방자치단체가 관광의 목적으로 가세했다. 마치 납을 금으로 바꾼다는 중세의 연금술(鍊金術)을 보는 듯하다.


역사의 조작은 당대 권력이 개입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복원에 관심을 보이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앞둔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위 ‘유사역사학’의 추종자라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국정교과서 사태 이후 다시 역사논쟁이 불붙었다.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은 권력에 의한 역사교육의 정치화와 독점을 막고자 함이었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던 문 대통령이나 도 의원이 이번에는 같은 편 역사학자들로부터 공격을 받는 형세가 돼버렸다. 대통령의 역사에 대한 특정한 ‘관심’은 교육부나 문화재청 공무원, 역사 관련 공공연구기관에는 ‘지시’와 다름없다. 문체부 장관의 역사에 대한 편향성도 영향을 미칠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랑케의 “사실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는 역사 격언이 이 국면에서 정답인 것 같다. 역사학자라면 편견이나 선입견에서 벗어나 역사적 자료에 충실할 것을 주장한 랑케의 실증사학은 그 정신에선 여전히 유효하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국문학자 김태준이 지금 식으로 말하면 ‘유사국문학’을 비판하며 남겼다는 명언도 있다. “주기율표대로 해라, 연금술에 반대한다.”

ejy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