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6.06 윤희영 디지털뉴스본부 편집위원)
지난달 21일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 자정이 가까운 시간, 쿵 하는 소리가 밤의 적막을 갈랐다
(pierce the silence of the night). 40대 초반의 남자가 피투성이가 되어(be bathed with blood) 쓰러져 있었다.
응급실로 긴급 이송됐지만(be rushed to the emergency room) 이내 숨을 거뒀다(breathe his last breath).
생김새는 한국인인데, 이름은 필립 클레이라고 했다. 14층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take his own life leaping to his death).
경찰 조사 결과, 한국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미국에 어릴 때 입양됐다가(be adopted as a child) 성인이 된 뒤 추방돼온(be deported as an adult) 처지였다.
5년 전에 귀국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귀국이라고 할 수 없었다.
낯선 타국이나 다름없는 모국으로 강제 송환된(be forcibly repatriated) 것이었다.
이후 지난달 저세상으로 가기 전까지 친부모를 찾아보려 온갖 애를 다 썼지만(make every effort to search for
his birth-parents) 끝내 닿지 못했다.
그야말로 천애의 고아(a lonely orphan)로 이 세상을 떠났다.
1974년생인 그는 열 살 때 필라델피아의 한 부부에게 입양됐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grow into adulthood) 미국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양부모(adoptive parents)가 신청해줘야 했는데 무신경하게 방치한(stolidly leave it as it is) 탓이었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무국적자(stateless person), 불법체류자(illegal immigrant) 신분이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범법 행위를 한(break a law) 전력이 문제가 됐다.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리며(be tormented by depression and anxiety) 방황했던 시절의 코카인 중독(cocaine addiction),
상점 물건 훔치기(shoplifting), 자전거 절도(bicycle theft) 등 전과 기록(criminal records)이 추방의 빌미가 됐다
(provide a pretext for the deportation). 양부모는 연락이 끊어졌다.
2012년, 자신을 버렸던 모국으로 쫓겨왔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언어·문화 장벽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mingle with others due to language and cultural barriers)조차 어려웠다.
말이 안 통하니 일자리 얻는 것은 엄두도 내지(dare to look for a job) 못했다.
이래저래 5년을 버텼다. 막막했다. 먹고살아 갈 일이 까마득했다(be desperate to make a living).
14층 아래는 또 얼마나 까마득했을까. '사회적 타살'이었다.
장례식도 없이 화장될(be cremated without a funeral) 뻔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입양 기관 홀트복지회와 몇몇 입양아 친구가 장례식을 치러줬다. 위패에 적힌 한국 이름은 김상필.
한국에서 10년, 미국 27년, 다시 한국에서 5년. 42년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삶이었건만,
그에겐 고통스럽기만 한 인생 역정의 기나긴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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