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고치려는 유혹은 늘 있어..
촬영된 사진을 보정에 앞서 더 오래 보고 생각하라
얼굴에 여우나 토끼 분장을 하고 요란한 가면을 쓴 사진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자주 보인다. 수염을 그려 나이를 알 수 없게 하거나 서커스 광대나 마임 배우처럼 얼굴 전체를 하얗게 분장해서 누군지 조차 알아보기 힘들다. 이런 사진들이 스냅챗(Snapchat)과 스노(Snow), 페이스북 등에서 인기를 끌더니 최근에 새로 나온 스마트폰 카메라에도 기능이 추가되었다. 분장한 자신을 아는 친구들만 알아보고 모르는 사람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하는 사진들이 요즘 유행이다.
물론 직접 분장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카메라에 인식된 얼굴 위에 그림 스티커를 겹치면서 사진이나 영상이 실제처럼 변한다. 카메라가 눈과 눈 사이, 코와 입꼬리 위치 등을 점으로 인식해서 얼굴에 맞춰지는 증강현실(AR·Augmented Realty) 기술이 적용됐다. 변신한 모습으로 동영상과 라이브 방송도 할 수 있다. 옆 사람과 머리는 그대로 두고 얼굴만 바꾸거나 다른 사람 얼굴 사진을 가져와 내 얼굴에 씌우기도 한다. 사실적 재현 도구인 사진으로 찍고 피사체를 다시 그림으로 가리거나 누군지 모르게 변형시킨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재미로 한다지만 사진을 고치고 그것도 모자라 글씨와 그림까지 덧씌우는 것은 카메라 파인더에만 집중했던 사람들에겐 낯선 일이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온 지 10년, 폰 카메라는 혼자 놀기에 좋은 장난감이 됐다.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사진이 올라오고 사람들은 밋밋한 사진을 넘겨 버린다. 수많은 보정 앱이 사진을 더 예쁘고 멋지게 꾸며준다. 터치 한 번이면 푸른 하늘이 붉은 석양으로 변한다. 앵글이 평범하다 싶으면 화면 한쪽을 늘려 광각렌즈로 찍은 것처럼 바꿔준다. 사진 한 장을 스마트폰에서 바꾸고, 앱에서 바꾸고, 소셜미디어에서 바꿀 수 있다. 가짜 뉴스만큼이나 가짜 얼굴과 가짜 사진들이 쏟아진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도 어렵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기술은 감쪽같이 우리를 속이려 할 것이다. 이제 예쁜 사진을 보면 감탄보다 의심이 앞서 실물과 대조하려 들 것이다.
사실, 사진은 어렵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빛이 어렵고, 눈앞의 색들은 어지럽고 복잡하며, 프레임 안 인물이나 사물들은 언제나 시선을 분산시키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서 원하는 순간을 찍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사진을 고치려는 유혹은 늘 있어 왔다. 포토샵이 보급되기 전 필름 카메라 시절에도 사진의 합성과 변형은 복잡했어도 불가능하진 않았다. 하지만 사진에 손대는 것을 큰 잘못으로 여겼다. 일부 예술사진을 제외하고 사람들 대부분은 보정이 지나치거나 합성한 사진에 반감을 가졌었다.
이제 그런 생각들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사진 위 스티커 장식은 유행이 됐다. 무한 복제와 변형이 특성인 디지털 사진과 '좋아요'를 부르는 예쁜 사진을 공유하는 스마트폰 사진 문화는 사진의 보정과 변형을 쉽게 허락한다. 더 쉬운 촬영과 보정 기술이 보급된다면 사진으로 남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달 서울 통의동에 있는 갤러리 류가헌에서 유석 사진전이 열렸다. 전시장 벽엔 오래되어 글씨가 지워진 플래카드, 맨홀 뚜껑 위에 그려져 방향이 틀어진 화살표, 오래 써서 닳은 비누 등이 흑백 사진으로 걸려 있었다. TV 홈쇼핑 쇼호스트로 일하는 그는 가벼운 미러리스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주변에서 보는 사소한 것들을 찍는다고 했다. 유석은 "멋있고 좋아 보이는 것은 다른 사람이 다 찍는다. 나는 더 사적(私的)이고 사소한 것들을 찍는다. 누구나 보지만 찍지 않는 것들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내겐 살아가는 공부이고 사진"이라고 했다.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현재 전시 중인 앙드레 케르테츠 전시회도 사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케르테츠는 파리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샹젤리제 거리에 평범한 의자들을 죽 늘어놓고 그 그림자를 찍었다. 해가 비치는 에펠탑 뒤편의 그늘 속을 걷는 사람들, 시들어 고개가 꺾인 꽃, 밤거리의 불빛, 공원에 있는 부서진 벤치들, 안경이나 포크를 찍었다. 그는 이런 사진들을 "작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라 했다.
합성 사진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멋지고 예쁜 사진을 만드는 일도 더 쉬워졌다. 사진은 한층 더 표현이 넓어졌다. 그럼에도 멋지고 눈에 띄는 그림만이 사진의 전부는 아니다. 갈라진 보도블록 사이에 피어난 잡초, 강물 위에 반사된 한 줌의 햇빛, 텅 빈 거리의 그림자 등 흔하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의미가 더해지면서 사진으로 남는다. 사물들이 시(詩)처럼 다가오는 순간을 사진으로 남긴 수많은 사진가의 작품처럼 이미 찍은 사진을 고치기보다, 더 오래 보고 생각한 후 찍는다면 당신의 사진은 더 깊고 다양한 모습으로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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