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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4] 퇴사하겠습니다

바람아님 2017. 7. 15. 11:07

(조선일보 2017.07.15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만약 내가 가진 '자유의 크기'를 알 수 있다면 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언젠가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복잡한 일에 매여 있던 내게 그만큼 자유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내가 가진 자유의 크기는 내가 그것을 당장 그만둘 수 있는가의 여부라고. 

그해 회사에 사표를 썼다. 내 생애, 공식적인 마지막 사표였다.


2015년 10월 이나가키 에미코는 '이번 회는 매우 잘 쓸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쓰겠습니다. 

저 아사히 신문을 퇴사하게 되었습니다'는 말로 자신의 칼럼을 시작했다. 

기자로 입사한 그녀는 마흔 살에 퇴사를 결심한 후, 쉰 살에 회사를 나온다. 

회사를 그만두면 가장 불안한 건 역시 돈 문제 아닐까. 

그런데 그녀는 퇴사 후 돈이 자꾸 '쌓여서' 문제라고 말한다.


그녀가 10년의 세월에 걸쳐 준비한 미니멀리즘 생활을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단 집값이 싼 동네로 이사를 갔다. 집에 가스를 놓지 않아 버너를 쓰고, 목욕은 동네 목욕탕을 이용한다. 

그녀의 작업실은 대낮 공원의 벤치. 자동차나 에어컨은 없다. 

적게 일하고 적게 버는 대신 적게 쓰는 삶을 택한 것이다. 

덕분에 그녀가 얻은 건? 넘치는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는 것. 

요가 마니아인 그녀는 동네의 작은 카페를 빌려 사람들을 가르친다. 무료다.


"회사는 적당히 좋아하면 되지, 사랑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그녀의 주장대로 회사는 나를 만들어가는 곳이지, 나를 의지하는 곳이 아니다. 

마흔 살에 퇴사를 결심한 순간 그녀는 오히려 일이 즐거워졌다고 한다. 

회사가 나를 착취하는 게 아니라 내가 회사를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여유로워졌다나. 

새겨들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10년을 준비했으니, 이 정도면 '퇴사'가 아니라 '졸업' 아닌가. 주위에 퇴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퇴사가 '해고'가 아닌 '졸업'이 되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언제나 입사보다 퇴사가 더 힘들다. 

들어갈 땐 '함께'였지만 나올 땐 철저히 '혼자'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