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처음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 호러스 알렌은 의사였다. 갑신정변 때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해 의료선교의 길을 연 그의 한국명은 안련(安連). 국내 첫 근대식 병원 제중원을 세운 그의 이름이 의술로 복음을 ‘안전하게(安) 연결하는(連)’ 뜻이라니 절묘한 작명이다. 그와 함께 활동한 윌리엄 스크랜턴의 한국명 시란돈(施蘭敦)은 난(蘭)처럼 고귀하고 생명력이 강한 믿음을 널리 펼친다(施)는 의미다.
선교사들은 발음이 비슷하면서도 의미가 통하는 한자로 한국 이름을 지었다. 연세대 설립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의 이름 원두우(元杜尤)는 갖은 환난을 많이(尤) 막아내는(杜) 힘의 근원(元)이란 뜻. 당시 선교 현장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고개가 숙여지는 명명(命名)이다. 아들인 호턴 언더우드는 한양에서 태어난 경사라 해서 원한경(元漢慶)으로 지었다.
기독교서회를 세운 존 W 헤론의 혜론(惠論)은 입국 5년 만에 은혜(恩)를 전파(論)하다 과로로 숨진 그의 삶을 상징한다. 토론토의대 교수였던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의 석호필(石虎弼)은 독립운동을 도우며 휘어진 화살을 바로 잡아준 틀(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새뮤얼 무어 선교사의 모삼열(牟三悅)은 소가 소리치는 모습(牟)처럼 백정들이 해방됐으니 거듭 거듭 기쁘다(三悅)는 의미다.
이 밖에도 개화기의 한국을 도운 이들이 많다. 평양 선교 개척자 윌리엄 홀(홀·忽)과 경성여자의전을 세운 부인 로제타 홀(허을·許乙), 숭실대 설립자 윌리엄 M 베어드(배위량·裵緯良)….
한국이름 인요한(印耀漢)으로 더 유명한 존 린턴 연세대 교수의 할아버지 윌리엄 린턴(인돈·印敦)은 48년간 의료·교육 선교에 힘쓴 한남대 설립자, 아버지 휴 린턴(인휴·印休)은 600여 교회 개척자다.
귀화한 외국인들은 새로운 성씨의 시조가 되기도 했다. 외래 성씨는 중국계·몽골계·여진계·위구르계·아랍계·베트남계·일본계·네덜란드계 등 다양하다. 덕수 장씨의 시조는 위구르계 장수 장순룡(張舜龍), 화산 이씨의 시조는 베트남 왕자 이용상(李龍祥·리롱뜨엉), 원산 박씨 시조는 네덜란드인 박연(朴淵·벨테브레)이다. 2000년 귀화한 러시아 프로축구 선수 신의손(申宜孫·발레리 사리체프)은 구리 신씨, 방송인 로버트 할리(하일·河一)는 영도 하씨의 시조다.
어제는 브래드 쿠퍼 주한 미 해군사령관이 부산 구(龜)씨 시조가 됐다. 한미동맹친선협회장이 거북선(龜)과 큰 태양(泰日) 같은 힘으로 바다를 지켜주기 바란다는 뜻에서 구태일(龜泰日)이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빈센트 브룩스 주한 미군사령관도 박유종(朴侑鍾)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 이들 모두가 어려울 때 힘이 돼주고 미래의 희망을 함께 꿈꿔온 우리 식구(食口)들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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