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법과 사회] 김대업, 그리고 이석기와 한상균

바람아님 2017. 8. 18. 06:38

(조선일보 2017.08.18 최원규 논설위원)


거짓 '兵風 사건' 주역 김대업… 盧, 정권에 功 있다 사면 시도 

촛불 단체 "李·韓 석방" 요구, 법 고쳐 '빚 갚기 사면' 끊어야


최원규 논설위원최원규 논설위원


사면(赦免) 실무를 맡는 법무부 관계자들조차 경악했던 사면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막판인 2007년 12월 31일 발표한 사면이다. 

자신의 측근은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 측 인사들을 대거 사면했다. 

불법 도청을 묵인한 혐의로 기소됐던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장 두 명은 형(刑) 확정 나흘 만에 사면을 

받았다. 판결문 잉크도 마르기 전이었다. '빚 갚기 사면' '무원칙 사면'의 완결판이란 비판이 나왔다.


압권은 '병풍(兵風) 사건' 주역인 김대업씨 사면 시도였다. 

김씨는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을 폭로해 노 대통령 당선에 적잖은 공을 세운 사람이다.

하지만 대선이 끝나고 폭로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런 사람을 청와대가 임기 막판 슬그머니 

사면 명단에 끼워 넣은 것이다. 웬만큼 낯 두껍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일이다. 

"빚 갚으라"는 김씨 측의 은밀한 요구가 있었다는 말이 나왔다. 

법무부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지만 강행했더라면 최악의 사면으로 기록됐을 것이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그 일을 지금 떠올리는 건 그때와 비슷한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어서다. 

대선 직후부터 '촛불 단체'들은 국가 기간시설 타격을 모의해 징역 9년이 확정된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불법 폭력 시위를 

주도해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을 '양심수'로 둔갑시켜 8·15 광복절 특별사면을 요구했다. 

거리로 나와 "박근혜 정권에 분노하고 싸워서 이긴 건 이 전 의원과 한 위원장"이라며 "조건 없이 사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권 창출에 공이 있으니 사면해달라고 하는 게 10년 전과 똑같다. 요구가 노골적이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청와대가 지난달 "준비 시간이 부족해 광복절 특사는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심지어 광복절 사드 반대 집회 와중에도 '이석기, 한상균 석방'을 외쳤다. 

추석, 성탄절이 다가오면 또 거리로 나올 것이다. 

확실한 '채권'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청와대로선 끝까지 거부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작년 말 야권 인사들이 재판부에 한 위원장 석방 탄원서를 낼 때 함께 서명했다. 

사면을 계속 미루면 촛불 단체들은 "그건 뭐였느냐"고 따질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 전 의원과도 지우기 어려운 인연이 있다. 

노무현 정부는 반(反)국가단체인 민혁당 결성 혐의로 복역 중이던 이 전 의원을 정부 출범 첫해 광복절 특사로 풀어주고 

다시 2년 뒤에 복권시켜 선거에 나설 수 있게 했다. 그 덕에 그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당시 사면 업무를 다룬 청와대 민정수석이 문 대통령이었다. 

이번에 그를 사면하면 세 번째가 된다.


이런 사면을 납득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막기 어렵다. 

사면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막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지금은 사면법에 아무런 사면 기준이 없지만 법을 바꿔 규제 장치를 두면 된다. 

헌법(79조1항)도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사면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얼마든지 사면 권한과 절차를 

법률로 정할 수 있게 돼 있다. 예컨대 어떤 범죄는 사면이 안 되고, 형기(刑期)의 일정 기간을 채워야 사면할 수 있다는 등의 

제한 규정을 둘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회는 1948년 사면법을 만든 이후 그런 노력을 이제껏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마구잡이 사면을 남발할 수 있게 길을 터준 셈이다. 직무유기나 마찬가지다.


사면권은 야당일 때는 비판해도 정권 잡으면 놓치고 싶지 않은 기득권이다. 

이제껏 제대로 개정이 안 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번 정권이 진정 적폐 청산을 원한다면 사면법부터 고쳐 '사면 적폐'를 없애기 바란다. 

그래야 '빚 갚기 사면'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