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8.02.20. 01:39
다보스포럼이 탄생한 것처럼
평창도 궁핍과 전쟁의 상흔 딛고
지구촌에 꿈을 회복시켜 주기를
40년 전, 무작정 떠난 겨울여행의 잔상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 길은 1936년 이효석이 쓴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다. 장돌뱅이 허생원이 잡화를 실은 나귀를 동무 삼아 허적허적 걷던 메밀밭 길이었다. 일제가 파시즘으로 줄달음치던 당시 봉평 태생 식민지 작가에게는 강원도 향토색과 정서를 피워올릴 수밖에 다른 저항 수단은 없었다. 일제의 광기가 메밀밭에 내리는 푸른 달빛까지 걷지는 못할 터이다. 그래서 그 풍경이다. 허생원과 조선달과 동이가 좁은 산길로 나란히 들어섰다. ‘방울소리가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들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지난 설날 그곳에서 숨이 막힐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스켈레톤 태극전사 윤성빈이 평창의 그 험하고 좁은 산비탈을 달빛이 미끄러지는 속도로 활강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국민적 관심도 유별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오직 오기와 집념이 만들어낸 쾌거였다. 윤성빈의 허벅지는 밤 개울에서 등목을 해주던 허생원이 느꼈던 동이의 등짝처럼 듬직했다.
억눌린 식민시대의 산비탈에서 80여 년 후 세계무대를 거리낌없이 활보하는 늠름한 청년들이 태어났다. 500m 쇼트트랙, 은메달을 박탈당한 올 20세 최민정은 울음을 참았다. TV 카메라 앞에서 그녀는 ‘심판 판정을 존중한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그러곤 주 종목에서 코너 부스터를 가동해 금메달을 따고 환하게 웃었다. 의성 출신 갈릭 걸스는 컬링 세계 1, 2, 4위를 차례로 격파했고, 빙속 여제 이상화는 여전히 빛의 속도로 달렸다. 궁핍했던 메밀밭에서 피어난 한국의 금빛 드라마는 세계인의 심금을 그렇게 울리고 있다.
20년 후 평창은? 설피를 신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던 그 소년은 지금 평창식당 주인이 돼 외국 선수들에게 한국의 치맥을 신나게 인심 쓰고 있을지 모른다. 그 시절 누가 알았으랴, 구휼식량인 메밀이, 산비탈에 웃자란 귀리와 옥촉서(강냉이)가 웰빙 식품으로 각광받을 줄을. 허생원이 외롭게 걸었던 그 산길이 장수 건강을 설계할 세계적 산책길이 될 줄을. 개막식 빛의 공연, 뗏목에 탄 다섯 아이들은 정선아리랑 선율을 물결 삼아 ‘평화’ 나룻터에 도착했다.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 고위급 관계자들이 눈물겹게 바라봤다. 북한 정계의 노익장 김영남의 눈물은 민족 원류(源流)의 강에서 발원한 벅찬 감동일 것이다. 그 인간적 감동에서 분단을 치유할 공감의 씨앗이 움튼다. 뭉클한 민족애를 실은 우리의 화답은 북한 핵과 미사일에 새긴 억센 증오와 원한보다 힘이 세다.
그리하여 2018 평창의 메시지는 평화와 웰니스(wellness)다. 웰니스란 웰빙과 해피니스의 합성어, 여기에 세계 평화가 결합하면 평창 메시지는 다보스포럼의 ‘공유미래’보다 더 넓고 본질적이다. 강원도와 서울대는 평창을 세계 평화와 웰니스 세계기지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궁핍과 전쟁의 깊은 상흔을 간직한 평창발(發) 메시지가 결핍과 폭력에 신음하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꿈을 회복시켜 줄 것으로 믿는다.
우선은 북한이다. 평창 드라마로 일단 뒷전에 물러난 일촉즉발의 위기를 더욱 단단히 갈무리할 소중한 실마리를 우리는 목격했다. 미국의 묻지마 강공, 일본의 소심한 훈수, 중국의 불안한 침묵, 러시아의 예측 불가한 방관을 서로 연결할 가느다란 세선(細線)을 잣는 베틀이 평창 메시지다. 베틀을 돌릴 주인공은 남한과 북한, 다름 아닌 한반도인(人)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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