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동서남북] 北과 통하면 로맨스, 美와 통하면 불륜인가

바람아님 2018. 2. 23. 09:32

조선일보 2018.02.22. 03:14


北 대표단 청와대 방문 때 文 대통령 '소통·대화' 강조
정작 南은 분열·대립만 가득.. 北과만 通하면 痛恨 겪을 것
이한수 문화1부 차장

'通(통)으로 統(통)을 이룬다.' 평창올림픽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지난 10일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본관 로비에 걸려있던 배경 그림의 메시지다. 고(故) 신영복이 크게 휘갈겨 쓴 '通' 글씨에 판화가 이철수의 한반도 그림을 나란히 붙였다.

그림 밑에는 '統이 완성이라면 通은 과정입니다. 소통과 대화, 꾸준한 교류와 이해가 通의 내용이자 방법입니다. 通으로 統을 이루게 되기를'이라고 적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림 앞에서 북 최고 존엄의 특사 여동생과 기념사진을 찍고 글귀의 의미를 설명했다.


'통으로 통을 이룬다'는 명제는 같은 음, 다른 뜻 한자를 이용한 '말놀이'지만 꽤 깊은 통찰이 있다. 소통과 대화, 교류와 이해 없이 통합·통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성찰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지당한 말씀이 북(北)에는 통하는데 남(南)에선 왜 통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북과 통하면 로맨스, 우리 안에서 통하면 불륜이란 건가. 평화와 통합의 잔치인 평창올림픽이 곧 막을 내리면 '북로남불' 행태는 본격 막을 올릴 것이다.


11개월째 감옥에 갇힌 전(前) 대통령은 중형(重刑)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이른바 국정농단 파트너는 1심 판결에서 이미 징역 20년형을 받았다. 칼끝은 다시 전전(前前) 대통령을 겨누고 있다. 주요 측근이 벌써 구속됐고 전전 대통령의 감옥행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범죄 사실이 있다면 누구라도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지당한 말씀이 남에선 통하는데 북에는 왜 통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6·25 남침, 아웅산 폭탄 테러, 대한항공(KAL)기 폭파,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같은 숱한 범죄 사실엔 입도 열지 못하고 그저 북과는 통해야 한다고 한다. '북로남불'이다.


올림픽 폐막 후 본격화할 헌법 개정 논의도 '통'과는 거리가 먼 내용과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남에서는 갈등과 분란을 일으켜 추진 동력을 얻으려는 정치 셈법이 작동한다. '자유민주적 질서'를 명시한 헌법 조항과 교과서 서술에서 '자유'를 빼려는 시도가 왜 벌어지는지 소통과 대화는 부족하다. 헌법 전문에 '촛불 시민' 등의 구절을 넣으려는 일은 국민을 둘로 나눠 지지 세력을 결집하려는 행태일 뿐이다.


광장보다 의회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저항보다 산업 발전에 헌신한 다수 시민은 '비(非)국민'으로 분류된다. 교류와 이해가 아니라 분열과 대립의 방식이다. 그러면서도 핵을 절대 포기 안 한다는 북과는 통하려고 한다. '북로남불'이다.

미국과의 '통'은 점차 멀어지고 있다. 주한 미국 대사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계속 공석 중이다. 미 상무부는 최근 철강 무역 제재 12국에 한국을 포함시켰다. 캐나다·일본·독일·대만 같은 미국의 전통 우방은 다 빠졌는데 유독 한국만 들어갔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간 한마디 통화도 없다.


아베 일본 총리는 지난 16일 트럼프 대통령과 한 시간 넘게 통화하며 지속적으로 '통'하고 있다. 청와대는 미국에 결연하고 당당하게 대응한다고 한다. 중국과 북한에는 내세우지 못하는 '결기'가 미국을 대할 때면 나타난다. 남(南)이 미국과 통하면 불륜이고 북과 통해야 로맨스란 건가. '북로남불'이다.


우리 안에서 통하지 않고 미국과 통하지 않고 북과만 통하다가 끝내는 '통(痛)'에 이를 수 있다. 국민에 고통(苦痛)을 안기고 65년 동맹을 잃는 통한(痛恨)의 결과를 빚을 수 있다. '내로남불'은 정권을 망칠 뿐이지만, '북로남불'은 나라를 재앙에 빠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