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7-12-13 03:00
‘새들은 마지막 하늘을 지나 어디로 날아가야 하는가?’
1982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레바논에서 쫓겨났을 때 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가 쓴 ‘지구가 우리를 조여오고 있다’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면서 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명을 대변하는 데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만큼 변한 것이 없다는 말이다. 시인은 이스라엘에 내몰리는 동족을 하늘을 빼앗긴 새들에게 비유한다. 그는 이렇게 절규한다. ‘지구가 우리를 조이며/마지막 통로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예술이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군인들의 총구가 자신들을 겨누는 상황에서 예술은 무슨 예술인가. 사치다. 그러나 또 하나의 답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이 상처와 눈물을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리고 평화와 사랑의 복음을 전한 예수가 태어난 땅에서 자행되는 폭력을 기록하지 않으면 승자의 기록만이 남게 된다. 나치에게 당한 폭력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똑같은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러니를 예술에 새기지 않으면 불의의 흔적은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기념비적인 저서를 세상에 남긴 팔레스타인계 미국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팔레스타인인들의 스토리가 부족한 것을 개탄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이드가 바랐던 것은 세계인의 눈과 귀를 붙잡을, 팔레스타인인에 의한, 팔레스타인인을 위한, 팔레스타인인의 스토리였다. 세계는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스스로 기억하지 않으면 팔레스타인인들의 나크바는 언젠가 잊힌다. 고난의 민족에게 스토리는 사치가 아니다. 생명선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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