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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레터] 신종 학문의 출현/ '아이돌학(學)'

바람아님 2018. 4. 22. 11:13


 (조선일보 2018.04.21 이한수 Books팀장)


[편집자 레터] 신종 학문의 출현


이한수 Books팀장


아이돌 연구가 본격 학문 영역에 들어온 느낌입니다.

이번 주 '내 책을 말한다' 코너에 소개한 '아이돌을 인문하다' 말고도 아이돌 연구서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BTS 예술혁명'(파레시아)은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전 지구적 규모의 근원적 변혁을 이끌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한 저자는 아이돌과 팬이 함께 만드는 '방탄 현상'을 새로운 예술 형식이라고 말합니다.

발터 벤야민과 질 들뢰즈의 미학을 원용하면서 진지하게 분석합니다.

몇 달 전엔 'BTS를 철학하다'(비밀신서)라는 책도 나왔습니다.


이를 '아이돌로지(Idology)'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아이돌학(學)'이란 뜻으로요.

아,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하니 이미 '아이돌로지'란 웹진이 있네요.

근대 이후 처음으로 한국발(發) 학문인 '아이돌학'을 수출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한국에서 나타나는 우울하고 한심한 현상을 연구하는 신종 학문도 생길 수 있겠습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항공회사 회장 딸의 문제적 행태를 우리 발음 그대로 'gapjil(갑질)'이라 보도했더군요.

부조리한 사회의 심리와 배경을 심도 있게 연구하는 '갑질로지(Gapjilogy)'도 수출 학문 대열에 낄 수 있겠습니다.


또 유력한 학문이 있습니다. 이번엔 '댓글노믹스'라 부를까요?

인터넷 댓글을 조작하는 기술을 부려 공직을 요구하고 권력과 이익을 탐하는 정치·경제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요즘 한국 사회, 과연 연구 대상입니다.


 

BTS 예술혁명 -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  
이지영(저자)/ 파레시아/ 2018-04-19/ 244p/ 13,000원


방탄소년단, 그 혁명적 의미와 새로운 예술형식


방탄소년단(BTS)의 음악과 그 팬덤 아미의 열광이 어떻게 사회, 문화적인 현상이자 정치,

미학적인 사태가 되었는가? 유럽과 영미권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정상급 아이돌 그룹으로

자리매김한 방탄소년단(BTS. 이하 방탄)은 그저 인기를 얻는데 성공한 아이돌 스타를 넘어선다.

방탄과 그 팬덤 아미(ARMY)의 활동으로 초래된 변화는 오늘날 사회구조와 미디어, 예술형식에서

일어나고 있는 근본적인 변혁을 함축한다.

이 변화는 기존의 위계질서와 권력관계에 균열을 내며 세계를 뒤흔드는 혁명의 의미까지 담고 있다.

2016~2017년의 촛불혁명이 한국에 국한된 정치 변화를 가져왔다면 방탄과 아미로 인해 초래되고 있는 변화는

전 지구적인 규모의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변혁을 징후적으로 표현한다.


이 책은 방탄과 아미가 연대와 실천을 통해 일으키고 있는 사회, 문화, 정치, 미학적 현상을 ‘방탄현상’이라 명명하고

그 혁명적 의미를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리좀’ 개념으로 설명한다.

아미는 방탄의 팬덤이지만 단순한 소비자나 추종자가 아니다.

방탄의 활동에 사랑과 지지를 보내는 친구이자 세계로 진출시키는 군대이며 함께 예술을 완성해나가는 동반자다.

저자는 방탄과 아미가 이루어내고 있는 새로운 예술 형식을 발터 벤야민의 예술 변화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들뢰즈의

영화 철학을 바탕으로 ‘네트워크-이미지’라고 부르면서 새로운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자세하게 분석한다.


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해 ‘2018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의 후보로 선정된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진정한 가치와

이들이 불러일으킨 변화의 혁명적인 의미를 이 책을 통해 쉬우면서 흥미진진하게 만날 수 있다.
  


BTS를 철학하다 
저자 차민주/ 비밀신서/ 2017.10.18/ 198 p

104-ㅊ122ㅂ/ [정독]인사자실(새로들어온책)


미디어학, 철학, 대중문화를 연구한 저자가 BTS의 메시지와 정체성을 철학자들의

이론과 연계하여 감성으로 해석한다. BTS가 왜 이렇게 인기가 많아졌는지에 대한

성공방정식 분석이 아니다.

BTS가 전 세계 위태로운 청춘들의 영혼을 부축하고 비춰 그들의 미디어가 된 현재에서

BTS의 메시지와 청춘들이 만난 감성적 접점들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사유한다.


책에서는 크게 4개 챕터로 나누어져 BTS를 사유한다.

계속 진화해 탄생하는 사회의 담론들을 BTS만의 눈으로 읽어내려 사회의 굴곡을 전하는 BTS의 역할을 논한다.

BTS의 메시지는 소비가 놀이가 된 문화, 목적지를 모르고 시스템의 목적으로 살았지만 사회에 나와서도 계속해서

자유를 찾기 어려운 청춘들, 인종차별보다 심하지만 또 그 차별에 심각성이 없어 더욱 공고해지는

금수저와 흙수저로 이분된 금전계급, 누구 탓인지 알수 없지만 참여하지 않아서 주인이 될 수 없는 세상 같은 이슈들을

청춘의 불빛으로 조명한다.

이런 BTS의 메시지는 작가에 의해 존 롤스, 한나 아렌트, 소스타인 베블린, 리카르도 마체오,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한스 피터 마르틴 같은 철학자와 학자들의 사유에 겹쳐져 투명해진다.   [예스24 제공] 


    

    

(조선일보 2018.04.21 박지원 작가)


[내 책을 말한다] '아이돌을 인문하다'

도스토옙스키는 세계 문학사에서 손꼽을 위대한 작가다.

필자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을 읽고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독자가 수두룩하리라.

그의 소설을 자기 팬들에게 '꼭 읽어보라' 추천했던 아이유처럼.


박지원 작가박지원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철저하게 통속적이다.

가난에 시달렸던 그는 '팔리는' 소설을 써야 했다.

그는 소비자의 반응에 매 순간 촉각을 기울였고,

신문에 난 자극적 범죄 기사를 게걸스레 찾아 읽은 후

소설 소재로 썼다. 이 통속성, 이 상업성이 그의 심오한 사상과

만나 대작들이 탄생했다.


아이돌의 노랫말을 도스토옙스키 작품과 비견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둘의 공통점은 있다.

뭇 대중을 열렬하게 매혹하는 어떤 이야기에는 이 세계의 영원한

비밀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통속적이고 상업적인 것을

'가볍고 의미 없는 것'이라 치부하는 것만큼 인문학의 본질과

멀리 떨어져 있는 태도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아이돌을 인문하다'(사이드웨이)를 쓰면서,

몇몇 아이돌의 노래에 '정말로' 푹 빠져들었다.

책을 탈고한 후에도 중독된 듯 듣고 또 듣고 있다.

그들의 스토리텔링과 그들의 퍼포먼스,

무엇보다 그들이 내뿜는 '젊음의 밝은 힘'에 경탄하면서.


내가 그들의 노래와 사랑에 빠진 만큼 아이돌의 열혈 팬도 문학과 철학의 '어려운' 책들을 친숙하고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까?

자신이 따라 부르는 통속적 노랫말 속에도 동서고금의 반짝이는 인문적 성취가 배어 있다는 사실을

그들 또한 은연중 알아채지 않을까?


이 책의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바라건대, 그럴 수 있기를.


아이돌을 인문하다

(문학과 철학으로 읽는 그들의 노래, 우리의 마음)
박지원 저/ 사이드웨이/ 2018.04.13/ 630 p/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