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4.21 이한수 Books팀장) [편집자 레터] 신종 학문의 출현 이한수 Books팀장 아이돌 연구가 본격 학문 영역에 들어온 느낌입니다. 이번 주 '내 책을 말한다' 코너에 소개한 '아이돌을 인문하다' 말고도 아이돌 연구서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BTS 예술혁명'(파레시아)은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전 지구적 규모의 근원적 변혁을 이끌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한 저자는 아이돌과 팬이 함께 만드는 '방탄 현상'을 새로운 예술 형식이라고 말합니다. 발터 벤야민과 질 들뢰즈의 미학을 원용하면서 진지하게 분석합니다. 몇 달 전엔 'BTS를 철학하다'(비밀신서)라는 책도 나왔습니다. 이를 '아이돌로지(Idology)'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아이돌학(學)'이란 뜻으로요. 아,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하니 이미 '아이돌로지'란 웹진이 있네요. 근대 이후 처음으로 한국발(發) 학문인 '아이돌학'을 수출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항공회사 회장 딸의 문제적 행태를 우리 발음 그대로 'gapjil(갑질)'이라 보도했더군요. 부조리한 사회의 심리와 배경을 심도 있게 연구하는 '갑질로지(Gapjilogy)'도 수출 학문 대열에 낄 수 있겠습니다. 또 유력한 학문이 있습니다. 이번엔 '댓글노믹스'라 부를까요? 인터넷 댓글을 조작하는 기술을 부려 공직을 요구하고 권력과 이익을 탐하는 정치·경제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요즘 한국 사회, 과연 연구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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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8.04.21 박지원 작가) [내 책을 말한다] '아이돌을 인문하다' 도스토옙스키는 세계 문학사에서 손꼽을 위대한 작가다. 필자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을 읽고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독자가 수두룩하리라. 그의 소설을 자기 팬들에게 '꼭 읽어보라' 추천했던 아이유처럼. 박지원 작가
가난에 시달렸던 그는 '팔리는' 소설을 써야 했다. 그는 소비자의 반응에 매 순간 촉각을 기울였고, 신문에 난 자극적 범죄 기사를 게걸스레 찾아 읽은 후 소설 소재로 썼다. 이 통속성, 이 상업성이 그의 심오한 사상과 만나 대작들이 탄생했다. 아이돌의 노랫말을 도스토옙스키 작품과 비견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둘의 공통점은 있다. 뭇 대중을 열렬하게 매혹하는 어떤 이야기에는 이 세계의 영원한 비밀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통속적이고 상업적인 것을 '가볍고 의미 없는 것'이라 치부하는 것만큼 인문학의 본질과 멀리 떨어져 있는 태도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아이돌을 인문하다'(사이드웨이)를 쓰면서, 몇몇 아이돌의 노래에 '정말로' 푹 빠져들었다. 책을 탈고한 후에도 중독된 듯 듣고 또 듣고 있다. 그들의 스토리텔링과 그들의 퍼포먼스, 무엇보다 그들이 내뿜는 '젊음의 밝은 힘'에 경탄하면서. 내가 그들의 노래와 사랑에 빠진 만큼 아이돌의 열혈 팬도 문학과 철학의 '어려운' 책들을 친숙하고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까? 자신이 따라 부르는 통속적 노랫말 속에도 동서고금의 반짝이는 인문적 성취가 배어 있다는 사실을 그들 또한 은연중 알아채지 않을까? 이 책의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바라건대, 그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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